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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아로운 생각 Mar 24. 2023

무작정 혼술하면 안 되는 이유

그럴 바에야 자격이 없다

        

이른 점심을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집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 가까이 남았는데 배에서 벌써 신호가 왔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건널목을 건너서….’ 머릿속으로 집까지 가는 길을 반복해서 생각했다. 빨리 가서 저녁밥을 먹고 싶었다.    

 

정류장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분식집이 보였다. 커다란 냄비에서 끓고 있는 어묵이 맛있어 보였다. 국물이 자박한 떡볶이도 먹음직스러웠다. 저녁 장사를 위해 주인아주머니가 막 준비해 놓으신 것 같았다. 보는데 침이 고였다. ‘맛있겠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고 지나쳤다. 얼른 집에 가서 냉동실에 있는 불고기를 볶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0분 가까이 걸어야 하는 집까지의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분식집을 지나고 나니 더 배가 고파졌다. 입에서도 음식이 자꾸 당겼다. 뭔가 점점 먹고 싶어 지기 시작했다. 희한하게 처음에는 사탕 같은 간단한 간식이 생각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빵으로 밥으로 치킨으로 먹고 싶은 음식도 점점 기름지고 포만감 느껴지는 메뉴로 변했다. ‘안 되겠다. 빨리 가자’ 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그런데, 정육식당이 생각났다. 아직 식당까지는 가지도 않았는데 조금 더 걸으면 있을 식당을 어떻게 지나칠까가 미리부터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 먼발치에서도 보이는 등심구이 사진과 은근히 풍기는 고기 냄새가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먹고 갈지 말지가 서서히 고민되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한걸음 한걸음, 식당에 가까워갈수록 먹고 싶다는 마음은 더 간절해져만 갔다. 그리고 식당 앞에 다다른 순간 생각이 극에 달했다. 이대로 먹기를 포기하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스트레스로 쓰러질 것 같았다. 


‘먹고 가자!’ 어렵게 결심은 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식당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점심도 아니고 저녁 시간에, 분식집도 아니고 고깃집을 혼자서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먹고 갈지를 결정할 때보다 훨씬 고민이 되었다. 들어간다 쳐도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뭘 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식당 앞에서 머뭇거리기를 여러 번, 결국 밖에서 서성이는 나를 향해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 주시는 식당 아주머니 덕에 얼떨결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주머니가 나를 안내한 곳은 불판 없는 2인용 테이블이었다. 내가 간단한 식사를 하려나 생각한 것 같았다. 순간 무시당하는 것 같아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면서 이왕 들어왔으니 먹고 싶었던 메뉴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고기 먹을 거예요” 내가 말하자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 혼자 아니세요?” 그 말에 움찔했으나 다시 말했다. “혼자 맞아요” 아주머니가 또 이야기했다. “1인분은 안 돼요” 안 되겠다 싶어 연이어 말했다. “등심 2인분 주세요” 아주머니가 살짝 민망해하며 나를 불판 있는 테이블로 다시 안내했다. 나도 고기 먹으러 온 손님인데 묻지도 않고 야박하게 구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머니 덕에 들어왔으니 고맙기도 했다.     


‘촤악~지글지글’ 불판에서 고기가 구워지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동료들과 먹을 때는 순식간에 구워져 대화를 할 틈도 없었는데 혼자 먹으려니 같은 시간이 훨씬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뭘 해야 하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구워지는 고기만 쳐다볼 수도 없고 언제 탈지도 모르는 고기를 놔두고 스마트폰을 볼 수도 없고 죽을 맛이었다. 


다행히 고기가 익어 첫 입을 먹으려는 찰나. 새로운 손님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서너 명 직장인들 같았다. 붐비는 저녁 시간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우르르 들어와 무척 신경 쓰였다. 한 테이블 띄어 자리를 잡아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을 보니 혼자인 내가 처량해 보였다. 안보는 척 힐끔 나를 쳐다보는 눈길도 부담스러웠다. 식사를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주변 분위기를 의식하며 쭈뼛거렸다. 음식을 먹고는 있지만, 입으로 들어가긴 하는지 맛은 또 어떤 맛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목도 탔다. 시원한 냉수로 속을 가라앉혀 보려 했는데 느끼해지기만 했다. 옆 테이블 직장인들이 맥주로 건배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따라 마시고 싶어졌다. “아주머니, 여기 맥주 하나요” 큰 소리로 주문했다. 차라리 정신이 흐려지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대범한 척 목청을 높였더니 옆 테이블 손님 한 명이 나를 쳐다보았다. 괜히 크게 말한 것을 후회하였다.     


그 후로도 나는 등심 1인분과 맥주 1병을 더 주문하였다. 저녁 시간에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미안해서였다. 다른 테이블은 여러 명이 와서 많은 양을 주문하는데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내가 짐이 된 것 같았다. 남길 줄 알면서도 과한 욕심을 부렸다. 함께 하는 사람이 없으니 금세 배가 부르고 금세 취했다. 혼자 고깃집에서 술을 마셔본 적이 처음이라 속도를 대중할 수 없었다. 할 일 없으면 고기 한 점 먹고, 또 할 일 없으면 맥주 한 잔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그쯤 되니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고깃집엔 왜 왔나, 술을 뭐 하러 먹나. 맛있게 먹고 기분 좋으라 마시는 술을 주변 신경 쓰느라 즐기기는커녕 속만 버리고 말았다.      


회사에 다니며 혼자 밥을 먹어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퇴직 후 밖에서 혼자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힘이 들었다. 혼자 식당에 가지 않으려고 외출 전 시간 계산을 하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앞으로 혼밥, 혼술 할 기회가 더욱 많아질 텐데 걱정이었다. 기본적인 생활도 다시 연습해야 하는 나를 볼 때면 꼭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퇴직 후 첫 혼밥과 혼술은 허세로 시작해서 허세로 끝나고 말았다. 

회사 밖은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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