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집에만 있으려니 몸무게가 늘었다. 퇴직 전보다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움직임이 적어서 그런지 확실히 살이 쪘다. 거울을 보면 체형이 변하는 게 느껴졌다. 언제 사람을 많이 만날 기회가 생길지 모르니 둔해 보이지 않으려면 운동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생전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데 당장 급한 목적도 없으면서 할 생각을 하니 귀찮기만 했다. 평상시 눈여겨 둔 스포츠 종목이라도 있으면 배워보기라도 할 텐데, 경기관람이라고 해봐야 올림픽 메달 결정전이 고작이라 배우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전혀 없었다. 펜싱, 유도, 축구, 언뜻 기억나는 종목을 떠올렸지만, 그중 내가 할 만한 운동은 없었다.
그나마 걷기가 나아 보였다. 특별한 요령 없이 걸으면 되니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걷는 동안 오디오 북도 듣고 생각도 할 수 있어서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데도 좋을 것 같았다. 우선은 간단히 시작하고 효과가 있다 싶으면 좀 더 격한 운동으로 옮겨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하루 만보 걷기를 결심하고 신발장에 묵혀두었던 조깅화와 챙이 넓은 모자를 꺼냈다.
집 근처 도로를 걷는데 생각보다 할 만했다. 나오기 전에는 귀찮았는데 막상 집 밖으로 나와 햇빛도 보고 공기도 마시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당장 해 볼 간단한 결심부터 오랜 준비가 필요한 장기적 계획까지 미뤄두었던 생각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갔다.
타박타박. 한참 생각에 집중하며 걷고 있는데, “앗~!”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자전거 한 대가 나를 스칠 듯 지나갔다. 걷다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뒤를 쳐다보았는데 자전거 한 대가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얼떨결에 몸을 피하긴 했지만, 발이 뒤엉켜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고 말았다. 너무 놀라 가슴이 벌렁거렸다. 겨우 진정하고 상황 파악을 하고 나니 나와 부닥칠 뻔했던 자전거는 이미 저만큼 가고 있었다.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놀라게 했으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냥 내빼다니 너무 화가 났다.
‘아, 왜 자전거를 여기서 타!’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이 맞지 않아 보였다. 위험하게 차도에서 탈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좁은 도로를 보행자와 함께 사용하는 것도 뭔가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이미 자전거 때문에 한 차례 불편했었다. 조금 전 저만치 앞에서 오는 자전거 한 대를 보았는데 한눈에 봐도 속도가 붙어 있었다. 곧 나와 어긋나게 지나쳐야 하는데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내가 한쪽으로 피하지 않으면 부닥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피할 생각 없어 보이는 자전거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비켜주긴 했지만 사람 다니는 길에서 자전거 때문에 오히려 사람이 뒷전이 되었다 생각하니 못마땅했다.
처음 나온 운동인데 자전거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졌다.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자전거 때문에 방해가 되었다. 그나마 앞에서 오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뒤에서 또 온다면 내가 피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혹시라도 다칠까 봐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이미 걷기 운동은 물 건너간 듯했다. 사방으로 오는 자전거에 신경이 쓰여 생각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두리번거리며 걷는 자세가 운동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떨떠름해하며 걷다 보니 자전거 한 무더기가 보였다. 어디서 본 듯한 생김새였다. 자세히 보니 방금 마주쳤던 자전거들과 디자인이 똑같았다. 단순한 구조에 흰색과 초록색이 섞인 색상으로 몇 번 보지 않았지만 기억하기가 쉬웠다. 대체 어떤 브랜드인데 하나같이 타고 다닐까 싶어 다가가 살펴보았다. 안내 표지판이 있었지만, 내용만으로는 알 수 없어 검색해 가며 확인해 보니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대여용 자전거였다. 퇴직 전 팀원들과 함께 식사할 때 자전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자전거인 것 같았다. 지하철역에서 회사까지 타고 다니는데 너무 편리하다고 말했었다. 당시에는 귀담아듣지 않았는데,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쓰실 거예요?” 대학생처럼 보이는 청년이 내가 만지작거리고 있던 자전거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몰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보니 세워져 있는 자전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자전거를 타지 않을 거면 본인이 사용하려는 생각 같았다.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이 누가 보기에도 사용법도 모르는 사람 같았나 보았다. “아니에요. 타셔도 돼요” 자전거를 내어주는데 멋쩍었다.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다. 일만 하며 살다 보니 바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흐름을 놓치고 있었다. 당장 내 일과 무관하면 관심도 두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걷기 운동을 하고 있을 때만 해도 뒤에서 울리는 자전거 벨 소리를 듣긴 했었다. 설마 나에게 주는 신호임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자전거가 인도로 다닌다는 생각을 못 했으니 소리를 들으면서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세상에 있어야만 그 존재를 인정하고 반응했던 내 모습이 모자라 보였다. 자전거로 인해 겪은 불편도 내 세상에 없으면 이 세상에 없는 것이라 단정했던 나의 무지가 만든 사고였다.
자전거 때문에 마음먹고 나온 운동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엉망은 나 자신이었다. 내 관심에 없다고 또는 내 생각과 다르다고 마음을 닫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을지를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도 반성되었다. 나만의 성을 쌓으며 나의 왕국이라고 철옹성을 치는 동안 세상 밖 물정 모르는 맹꽁이가 돼버린 것 같았다.
생각도 귀도 더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앞으로 만날 세상의 문도 열릴 것이다.
※ 지금은 타기도 피하기도 모두 잘합니다.
※ 늘 제 글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