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멘탈만은 아니었다
“선생님, 저 나을 수 있을까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내가 물었다. 나의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의사는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처방 잘 따르세요.” 검진차 다시 찾은 병원에서 원하는 대답은 끝내 듣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보름 가까이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 가더라도 오랜 시간 앉아만 있다가 결국 제대로 볼일을 보지 못하고 그냥 나오기를 반복했다. 처음 삼사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 여겼다. 별로 불편하지도 않아 억지로 해결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배가 거북해지는 일이 잦아졌고 강도 또한 기분이 언짢아질 정도까지 높아졌다.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어 갖은 궁리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흡족하지 않았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자 확실히 전에 없던 불편감이 느껴졌다. 가끔 느껴졌던 증상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나를 괴롭혔고 이대로라면 곧 심각한 상태가 될 수도 있어 보였다.
그러던 주말 오후, 배가 너무 불편해 견딜 수가 없었다. 고통이 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전날 과식을 한 것이 상태를 악화시킨 것 같았다. 화장실에 앉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악-!’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힘을 주고 애를 써도 몸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자 마음마저 초조해졌다. 그 사이 고통은 빠르게 커져갔고 급기야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급하게 의료상담 콜센터로 전화했다.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보였다. “물 많이 드세요.” 내 고통을 알기는 하는지 상담 간호사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침착했다. 나는 하늘이 노랗고 눈앞이 캄캄해 곧 쓰러질 지경인데 처방이 물이라니, 실망스러웠다. “물! 물!” 가족에게 물을 달라고 하고 앉은자리에서 2리터 생수를 모두 비웠다. 그래도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물이 장까지 내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려, 목부터 배까지 연신 쓸어내려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더는 견디기 어려웠다. 그냥 있다가는 배가 부글부글 폭발할 것 같았다.
결국,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터질 것 같은 배를 움켜쥐고 간신히 병원에 도착해 보니 주말이라 대기 환자가 많아 한참 기다려야 했다. 대수롭지 않은 듯 문진 하는 의사도 서운했고 호명할 때까지 기다리라고만 하는 병원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병원에서도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악!’하고 연신 소리를 질러대며 괴로워하는 나를 사람들이 쳐다보았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로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가능하다면 당장 수술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관장합니다. 들어오세요.” 순서가 되어 응급실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간호사가 말했다. “네?” 관장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급한 마음에 응급실로 달려는 왔지만, 해결법이 관장일 줄은 몰랐다. 잠시 주저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가 싫었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그 와중에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게 제일 빨라요. 누우세요.” 그렇게 시작한 관장을 총 세 번이나 받았다. 간호사 말로는 나는 증세가 심각하여 한 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처음의 부끄러웠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한 번을 끝내고도 변화가 없자 이후로는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로 변하기까지 하였다.
병원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기진맥진해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어이가 없었다. 변비로 병원 신세를 지다니, 다녀오고도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몸마저 말썽을 일으키자 속상한 생각이 들었다. 모두 내 잘못이었다. 온통 마음에만 집중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퇴직 후 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온갖 애를 써가며 마음을 챙기는 동안 내 몸은 한 번을 챙겨보지 않았다. 당연히 끄떡없을 거라 생각하여 관심에도 두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몸이 삐걱거리는 신호는 줄곧 있었다. 우선 늘 피곤에 절어 있었다. 부족한 수면시간이 원인이었다. 장차의 고민으로 새벽녘에 잠들어도 직장인 시절 기상하던 시각에 눈이 떠지다 보니 항상 피로한 상태였다. 자연이 오후가 되면 신경이 예민해졌고 뒷골이 쭈뼛 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소화도 잘 시키지 못했다. 수면시간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같은 양을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여 소화제를 달고 살거나 심하게는 급체를 하여 맥없이 지내는 일이 잦았다. 이렇듯 곳곳에서 내 몸이 온전치 않음을 느꼈지만 그러려니 하며 온통 마음만 돌보았다.
퇴직을 했음에도 내 삶에서 직장생활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곳은 없었다. 작동을 멈추어도 한동안 반동 때문에 움직이는 기계처럼 도처에 회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생각의 습관도 그중 하나였다. 한 가지에만 집중했을 때 후에 겪는 결별의 후유증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이미 경험했으면서 아직도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한 곳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회사를 떠나며 다시는 하나의 대상에게만 관심을 쏟는 균형 없는 삶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어느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왜 항상 이런 식일까. 왜 호되게 아프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는 걸까.
그래도 깨져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깨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정 가운데 깨지는 게 결말에 깨지는 것보다 차라리 나으니까.
이 또한 깨지고 나서야 얻을 수 있었던 깨달음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고통의 힘을 믿는다.
견딜 수만 있다면 분명 고통은 고통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