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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29. 2022

불로뉴 숲에서 승마를 한다는 것


보통 승마장에서 말을 타면  타임 기준이 45 정도다.  정도 타고 나면 말이 힘들어서 이렇게 시간을 정해놓은 것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엔  컨디션이 괜찮았는지 쉬지 않고 100 가량 내리  적도 있긴 했다. 끝나고 마방에 돌아간 말은 무서운 속도로 건초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집에서 고이 싸들고  당근과 사과를 주자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맛있게도 먹었다. 힘들긴 힘들었었나보다, 하고 돌아서나도 엄청난 허기짐이 몰려왔다. 얼른 으로 가 맥주 한잔을 들이키고 나니 산소호흡기를   마냥 개운했다.


부티는  시간을 잘도 달렸다. 한국에서 구보를 한번(사실 한번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략 다섯 발걸음?) 밖에 하지 못해서    있을지 걱정이 됐으나, 부티는 아랑곳 않고 신나게  달려줬다. 승마장에서는 달리라고 명령을 하니 말이 '그래 내가 한번 뛰어준다'라는 느낌이었다면, 파리의 숲에서 부티는 '내가 신나니까 달린다'라고 하는  했다.




불로뉴숲은 워낙 넓다보니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차도가 숲 곳곳에서 가끔씩 교차되어 나타나는 지점들이 있었다. 처음 부티를 타고 찻길에 당도했을 땐 약간 당황했다. 부티가 계속 막 튀어나갈까봐 걱정이 됐고, 어느틈에 건너가야할지 타이밍을 못 잡을까봐 걱정이 됐고, 건너가는 도중에 부티가 서버릴까봐, 그리고 그런 부티를 내가 잘 통제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됐다. 겨우 왕복 2차선 정도 되는 길을 두고 그 짧은 시간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을 더 길게 할 새도 없이 우리 일행 넷, 그러니까 부티와 나, Baptiste 아저씨, 그리고 Baptiste 아저씨의 말(미안해 이름을 까먹었어ㅠ 솔직히 너의 이름은 좀 알아듣기 힘들더라)이 길가에 서 있으니 차들이 알아서 멈춰섰다. 당연한듯 우리에게 길을 양보했다. 그 양보는 굉장히 감동적이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배려였다. 만약에 한국에서 같은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애초에 말을 타고 나와서 자동차와 조우할 일이 없긴 하지만.


Baptiste 아저씨는 익숙한 듯 손을 들어 감사와 미안함의 표시를 하며 길을 건너갔고, 부티는 그 뒤를 잽싸게 따라갔다. 부티도 여기서 우물쭈물하면 안된다는 눈치가 있었던 것 같다. 몇번 반복되자 나도 그 배려받는 순간을 여유있게 누리며 목례로 운전자들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말을 타고 있어도 도시의 교통흐름에서 배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했다.


왜냐하면 한국은 말을 탄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영역이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평소에 말을 탄 사람들을 본 적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길. 지금은 승마장 아니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산길이나 제주도 초원에서 탈 수 있는 정도인 것 같다. 어떤 외승코스는 얼마나 정비가 안되어 있는 산길인지 너무 험난해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무슨 암벽등반인가) 사실 한국도 도로교통법상으로는 말을 타고 차도를 이용하는게 가능하다. 1마력의 교통수단인셈. 다만 자동차가 달리기에 좋은 딱딱한 아스팔트가 말의 무릎 관절에는 그닥 좋지 않은 환경이겠지만.


불로뉴숲 같은 평범한 도시공원에서도 말을 탈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했다


파리에서처럼 도시 외곽의 공원이나 숲에 가서 말을 타겠다고 하면 쏟아지는 민원으로 나는 공무원의 원망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공원에서 말 타면 안된다고 어디 써붙여 놓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상상해봐도 한국에서는 '절대 불가능'이다. 일단 말은 걸으면서 똥을 싼다. 그것도 엄청난 양을. 한곳에 자리를 잡고 응가를 하는 강아지들과 달리, 말들은 그렇지 않았다. 승마장에서 한참 신나게 말을 타고 있으면 교관님이 가끔 "말 똥싸요!!"라고 다급하게 외치실 때가 있는데, 말을 세우라는 뜻이다. 걸으면서 똥을 나열해놓으면 치우기가 더 힘들기 때문. 싸놓은 똥을 밟지 않고 잘 피해가는 것도 필요하다.


펫티켓에 비추어 생각해보자면, 만약에 말이 공원에서 똥을 싸면 나는 말에서 내려 얘를 어딘가에 묶어놓고 똥을 치워야 한다. 강아지똥이야 작은 비닐봉지 하나만 있어도 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말똥은 그럴 수 있는 양이 아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항상 짊어지고 말을 타야 하는 것이다. 그럼 파리에서는 어떻게 말과 함께 공원이나 숲을 유유자적 돌아다닐 수 있는 걸까. 이건 잘은 모르겠지만 이번 외승에서 보고 겪은 것과 소위 말해 마계(馬界)에 몸 담고 계시는 전문가분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짐작해보건데, 말의 습성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이해와 암묵적 동의, 그리고 내가 지불한 비용의 일부가 공원 유지 관리에 쓰이는 제도, 이 정도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때는 첫 외승에 그저 신이 나서 이런 진지한 생각을 못했는데, 다음에는 꼭 물어봐야겠다. 어떻게 이런 공존이 가능하냐고.




불로뉴숲을 걷기도, 달리기도 하면서 한참을 가다보니 갑자기 범상치 않은 외관의 건물이 나타났다. 그 앞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하기 위한 듯한 줄을 길게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루이비통 재단의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이었다. 숲 속에 미술관이 있어? 아니, 그보다 여기가 이런 미술관이 들어올 정도로 도심에서 가까운 곳이었던가?


계속 부티와 함께 나무가 빽빽이 우거진 숲과 너른 잔디밭을 달리다보니, 이곳이 도시의 일부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거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불로뉴숲은 미술관 뿐만 아니라 동물원, 식물원, 놀이공원, 경마장, 테니스장 등등이 곳곳에 들어와 있는 그야말로 종합 여가 테마파크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승마도 이런 공원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여가활동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에 나는 문화충격의 확인사살을 당했다.


미술관 앞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미술관 건물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Baptiste 아저씨의 말이 가까이 가기 싫다고 땡깡을 부려서 우리는 길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다. 부티는 나 같은 초짜도 잘만 태우고 달리는 베테랑 답게 Baptiste 아저씨가 말과 기싸움을 하는 장면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눈 깜짝할 새 두 시간이 흘러 있었다. 처음 트럭을 주차해두었던 장소로 돌아오자 부티는 기다렸다는듯 풀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부티를 반쯤은 사랑스럽게, 또 반쯤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두 시간 내내 쉬지 않고 말을 타고 나니 너무 배가 고팠던 나는 부티 옆에서 같이 풀이라도 뜯어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잠시 후 말들도 트럭 뒷칸에 자리를 잡고, 우리는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향했다. 드디어! 상상만 하던 베르사이유에서 말을 타는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배가 고픈 와중에도 그 설렘은 감출 수가 없었다. 친구와 유럽 배낭여행 때 가본 이후 16년 만에, 말과 함께 다시 찾는 베르사이유 궁전이었다. 베르사이유는 여전히 아름답겠지. 그 넓은 운하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보고 오겠구나, 싶었다.


"거기가면 canter 실컷 할 수 있어요."


아저씨는 감상에 젖어 있는 나에게 구보의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듯 비장하게(?) 말했다. 그래, 구보 그까짓거. 지금 부티와 함께라면 올림픽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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