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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n 22. 2022

승마의 기본기술, 말과의 밀당

그렇게 파리에서의 세 번째 외승이 급 성사됐다. 충동구매를 해도 이런 충동구매를 다 하다니. 언제부턴가 망설여질 때는 일단 go하자는 주의가 됐지만, 2시간 가량 기승에 30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쓴다는 것은 지름신의 은총이 좀 많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도 이미 하루 말 타는 데만 60만원 이상을 쓴 상태에서. 결제를 마치고 난 후 나는 호텔방 침대에 누워 반성모드에 들어갔다.


'이거 돈을 너무 많이 쓰는거 아닌가?'

'이렇게 주구장창 말만 타러 갈거였으면 뭐하러 이 비싼 시내 한복판에 있는 호텔을 잡았어?'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할 수 있을 때 해야지.'

'돈은 한국가서 다시 벌면 돼.'


그렇게 한참을 내 안의 수 많은 내가 여러 가지 주장들을 펼쳐댔다. 이미 결제까지 다 해놓고 그런 번민의 시간을 가지는 게 무슨 소용인가싶지만, 그래도 양심처럼 남아 있는 이성이 '이게 정말 잘한 결정인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잘한 결정'이 맞았다.




불로뉴숲과 베르사이유 공원에 이은, 말이 안되게 너무 좋은 프랑스 파리의 마지막 외승지는 생클루 공원이었다. 나의 사치스런 파리 시내 한복판 호텔에서는 RER을 타고 30분 남짓만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원래는 왕족들이 머물던 '생클루 성'의 정원이었다고 하지만 그 흔적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은 파리지앵들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아름다운 공원으로 사랑 받는 곳이다.


이날도 나의 외승 파트너는 부티였다. 그래도 이틀 전에 하루 왠종일 같이 운동한 사이라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 친근한 느낌이 드는 것이 기분 좋았다. 동물과도 사람 못지 않게 조금씩 알아가고, 친해지고,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알게 되는, 초코파이 같은 정이 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국의 승마장 말들도 언제부턴가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고 혼자 괜히 뭉클해지곤 하는 요즘이기도 하다.


생클루 공원은 베르사이유 궁전 못지 않게 말을 타고 달리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그리고 이날도 부티는 틈만 나면 풀을 뜯어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처음보다 단호하게 고삐를 잡고 못하게 하려고 했으나, 어쩐지 부티가 갈수록 더 마음대로 구는 것 같았다. '내가 너를 태우고 달려는 주지만 먹고 싶을 땐 먹는다'고 말하려는 듯, 잘 달리다 말고 갑자기 멈춰서서 태연하게 풀을 뜯어 먹었다. 등에 누가 타고 있건말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마이웨이 정신이 느껴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점점 심해지는 허리 통증을 견뎌내야 했다.


2시간 가량의 코스가 끝나고 처음 주차한 장소로 다시 돌아왔을 , 부티의 내멋대로 마인드는 하이라이트를 찍었다. 아무리 박차를 넣고 고삐를 당겨도 부티는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바닥에 고개를 쳐박고 일주일은 굶은 것마냥 풀을 뜯어먹었다. 심지어 어디 풀이  맛있을까 요리조리 탐색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나는 그저 부티 등에 타고 앉아 그녀 식사가 끝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되게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말에게 모든 주도권을 다 뺏긴 무기력한 초짜 기승자의 모습이다




"말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세요."


기승횟수가 조금 쌓이고 '왕초보'에서 벗어나 '적당히 초보'가 됐을 때쯤, 교관님들이 '말을 활발하게 보내라'는 것 다음으로 나에게 많이 하신 이야기는 '말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해라'였다. 물론 그것도 말을 활발하게 보내는 것 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500킬로그램짜리 동물이 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겠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그걸 못하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말의 지능은 5살짜리 어린아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땐 말이 그다지 똑똑하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5살 정도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땡깡도 부릴 줄 알고,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사람 봐가면서 반항도 하는 나이다. 지인이 어린이집 비슷한 곳에서 봉사활동 비슷한 것을 했는데 자기가 밥을 줄 때는 입 꾹 다물고 있던 아이가 선생님이 먹이니 순순히 받아 먹는 것을 보고 심한 배신감을 느꼈었다며, 5살 지능의 영악함에 대해 실감나게 이야기한 적도 있다.


말도 똑같았다. 내가 타고 있을 땐 꿈쩍도 하지 않거나 요리조리 제멋대로 가던 녀석이 교관님이 타자 언제 그랬냐는듯 발랄명쾌하게 달리곤 했다. 분명 방금 내가 탔던, 내 말은 지지리도 않듣던 그 말이 맞는데, 바로 앞에서 보고도 나는 멀쩡한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등에 타고 있는 인간이 초보인지 무서운 교관인지,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기승자인지 아닌지, 말은 다 알고 있었다.


부티도 몇 시간 함께 운동하고 나니 이제 내가 누구이며 어느 정도 실력의 기승자인지 알았던 거다. 내가 부티에게 초코파이 정을 느끼는 동안, 부티는 '아, 요전날 만났던 초짜 기승자구나. 오늘은 마음대로 풀 뜯어먹어도 되겠다. 아싸!'라고 쾌재를 불렀던 것이다. 말이 다른건 몰라도 기억력 하나는 기똥차다고 한다. 사람과 그 오랜 세월동안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기억력 덕분이지 않을까. 가자는 명령, 달리자는 신호, 멈추라는 지시 등등, 말이 기억하고 따라주지 않았다면 인간은 말이 아니라 강아지를 타고(?) 다녀야 했을지도 모른다.


말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해라. 그 이야기는 때론 단호하게 말을 통제해야 하지만, 자유를 줄 때는 줘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과의 밀당에서 승리하는 것. 초보 기승자가 중급으로 레벨업하기 위해 반드시 클리어해야 하는 과제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파리 서쪽의 불로뉴 비양크루 지역에서 PCR 검사를 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정확히 48시간 전이었다. 일주일 동안 파리에서 말도 타고 오페라도 보고 와인도 원없이 마신 나는 이날 남은 하루를 PCR 검사 대기에만 쓰더라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검사하러 가기 전에 점심도 느긋하게 먹었다. 아침 공복에 2시간동안 부티와 씨름을 했더니 배가죽이 등에 붙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PCR 검사소로 가는 길에는 많은 음식점들이 있었지만 그와중에 또 대충 먹기는 싫어서 고르고 골라 크레페 전문점에 들어갔다. 방금 아름다운 생클루 공원에서 신나게 말을 타고, 파리 외곽의 한 식당에 앉아 버섯과 계란을 넣은 크레페, 그린 샐러드, 그리고 화이트와인 한잔을 마시고 있는 그 순간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다음에는 실컷 말 타고, 맛있는 음식 먹고, 또 실컷 말 타는, 그런 여행을 가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예상보다 일찍 실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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