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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l 20. 2022

Independently하게 말을 탈 수 있습니까?

파리 외승 이후 다음엔 '실컷 말 타고 맛있는 것 먹고 또 실컷 말 타는' 여행을 가리라던 계획은 예상보다 일찍, 그러니까 파리를 다녀온지 4개월만에 실현됐다. 드넓은 베르사이유 궁전의 초지를 부티와 신나게 달렸던 그 시간을 못 잊은 나는 틈만 나면 핸드폰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질척거리다, 프랑스의 다른 외승지들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냥 어떤게 있나 한번 보기나 하자며 시작된 인터넷 서핑은 어느새 본격적인 여행계획을 짜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유럽의 외승지들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를 보러 가는 것도 있었고, 와이너리 투어를 하는 것도 있었으며, 몽생미쉘 같은 유적지를 가기도 했다. 유럽이 아니라 전 세계로 검색 범위를 넓히면 더 기막힌 코스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불과 몇달 전에 1년 치 돈잔치를 다 하고 온 처지였다. 이미 마음은 유럽행 비행기를 타버린 상태였지만 다음 여행은 내년에나 가자며 겨우 현실로 돌아오려던 그때였다.


내 눈을 뒤집어지게 만든 외승지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남부 프랑스의 라벤다밭 코스였다! 나는 남부 프랑스 특유의 그 낭만적이고도 아기자기한 시골스러움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라벤다가 만개하는 7월에만 딱 4번의 기회가 있다는 점도 내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게 하기에 충분한 자극이 됐다.


나는 곧 적토마와 같은 추진력으로 문의 메일을 보냈다.




'혼자서 안장을 올리고 내리는 일을 다 할 수 있어야 하고, 말의 세 가지 걸음걸이를 모두 편안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못 따라오면 가이드가 당신을 버리고 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럽 외승지에서 요구하는 승마실력은 이렇게 설명돼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기승횟수 몇 회, 이런 개념은 없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았는데, 유럽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생활스포츠로 승마를 많이 접하기 때문에 기승횟수를 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에 만난 어느 독일인 아주머니는 엄청난 실력자의 아우라를 뿜어내셔서 "진짜 너무 잘 타신다"고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한 평생 말을 탔거든요."


 평생 말을 탔다니. 그걸 어떻게 ' ' 탔는지로 계산할  있을까.  대충 사만오천칠백삼십두번? 이렇게 말하기도 웃기는 일일  같았다.


남부 프랑스의 아름다운 라벤다밭. 이곳을 말을 타고 다시 한번 갈수 있다면!


아무튼, 이번에 파리에서 구보도 많이 해봤고 7월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 운명에 맡겨보자는 생각으로 예약 신청서를 다운 받아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기승실력을 체크하는 몇 가지 질문이 나열돼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첫번째 질문에서부터 막히고 말았다.


"Independently하게 말을 탈 수 있습니까?"


내 영어실력이 어디가서 부끄러운 정도는 절대 아니다. independetly라는 단어의 뜻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단독으로'. 그런데 저 문장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독으로 말을 탈 수 있냐고요? 그게 뭔데요...?


혹시 내가 모르는 independently의 다른 뜻이 있나 싶어서 영어사전을 뒤져 보았지만 그런건 없었다. 조금 고민하다 나는 No라고 답을 썼다. '가이드가 버리고 갈 수 있다'는 경고문이 조금 무섭기도 했고, 어쨌거나 아직까지 한번도 교관님이나 가이드 없이 온전히 '혼자' 말을 타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질문들 역시 나의 답은 No의 연속이었다. 승마와 관련된 자격증이 있는지, 혼자 안장을 올리고 내릴 수 있는지, 몇박 몇일 동안 이어지는 외승을 가본적이 있는지 등등, '그럴리가 있겠냐'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내용 일색이었다. 프로가 아닌 취미로 승마를 즐기는 일반인들도 이 정도는 갖추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도 당황스러웠고, 또 누군가는 이런 질문들에 Yes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충격적이었다.




예상대로, 나의 예약 신청은 대차게 거절을 당했다. 너는 아직 이 코스로 외승을 갈 수 있는 실력이 아니라는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팩폭을 당한 나는 약간 자존심이 상해서 independently하게 말을 타는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가이드가 있건 없건, 말을 마방에서 데려와서 빗질시켜주고, 안장 올려주고, 재갈도 물려주고, 타고 나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장비들을 다 풀어주고, 마무리 정리까지 모두 혼자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대신 초보자들도 갈 수 있는 것이라며 다른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프랑스 알자스 지방으로 가는 일주일간의 산악승마 코스였다. 남부 프랑스의 라벤다밭에서 그림 같이 말을 타는 상상을 한껏 하다 갑자기 다운그레이드가 된 것 같아 솔직히 실망이 컸지만, independently의 정의를 본 나는 순순히 꼬리를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승마장에 말을 타러 갈때는 저 모든 기승준비를 교관님들이 해주셨고, 나는 그걸 당연하게 여겨왔다. 어느새 승마를 시작한지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에서는 단한번도 independently하게 말을 타보지 못했다. 그럴 기회도 없었지만 아무도 그래야 한다고 알려주지도 않았다.


유학은 커녕 교환학생도 한번 안 가본 나는 알자스에서 independently하게 말을 타는 법을 배워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담당자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렇다면 알자스 프로그램으로 신청하겠습니다!"


프랑스 외승 에이전시에서 추천한 초보자 코스인 알자스 벨몽의 승마학교 Cheval Alsace




담당자는 한달이 지나도록 답장이 없었다. 적토마와 같은 추진력으로 머리보다 가슴이 시키는 결정을 내렸건만, 그런 결단이 무색하게 나의 두번째 해외외승 계획은 더 이상 진전이 되지 않았다.


너무 초짜여서 그냥 무시하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몇일이 지나니 서서히 이성이 돌아오며 나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몇달 전에 돈도 많이 썼는데 당분간 해외로 외승가는 꿈은 접어두고 기승 연습이나 더 열심히 하자. 우리나라에도 외승갈 데는 많을거야. 영어도 잘 안 통할 것 같은 알자스의 시골마을에 일주일동안 혼자 가서 말을 탄다는 건 좀 너무 무한도전스러운 것 같아.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고 있던 어느날,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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