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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l 24. 2022

알자스 승마학교를 찾은 최초의 한국인

"너무 늦게 답장을 해서 미안합니다. 그동안 아파서 메일 확인을 못했어요."


나에게 알자스 외승 프로그램을 추천하고선 한달동안 잠수를 탔던 담당자 Laurie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팠다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속으로 '니가 한국인이었다면 실업급여 받을 준비해야 했을 거다'는 생각을 하며, "괜찮습니다. 답장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영어식의 너스레를 떨었다.


너무 초보여서 무시하는건가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Laurie는 정말 최선을 다해, 유럽 사람 답지 않은 스피드로 알자스 승마학교로부터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왔다. 하지만 한달 전과 한달 후의 상황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처음 내가 계획했던 여행날짜까지 겨우 40일 남짓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비행기값이 그새 두배로 올라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가슴보다 머리가 먼저 나섰다. '니가 재벌이냐, 유럽을 1년에 두번씩 가게?'


그래도 뭔가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Laurie는 아직 신청자가 나밖에 없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예약 오케이를 받아온 상태였고, 미안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너무나도 빠릿빠릿하게 일사천리로 일을 진전시켜주고 있었다. 지난번 파리에서 말 타러 갔을 때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이 동네는 어째서 '최소출발인원'이란 개념 없이 이렇게 운영될 수 있는지 의아해하면서, '다음'이란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며 나는 급히 다시 지름신을 소환했다.


이러다 또 혼자 타는거 아닌가 걱정했던 것은 기우였다. 알자스에 머무는 일주일동안 나는 말을 사랑하는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리스럽지만,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이번 여행을 또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데는 중요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 갑자기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려 해외여행길이 막힐 수도 있다느니, Laurie가 언제 또 잠수를 탈지 모른다느니,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초보자 코스가 망해서 없어지면 어떡하냐느니, 이유를 만들자면 다양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또 기백만원이 드는 여행길에 오르기엔 생각보다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승마를 시작하고 처음에는 그저 열정을 바쳐 즐기는 취미가 생겨 기뻤다. 누가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승마요!"라고 대답할 수 있어서 뿌듯하고 즐거웠다. 그 생각에 작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 바로 지난 파리 여행 때였다.


파리에서 외승을 갔을  느꼈던 가장 놀라운 점은 도심에서 멀지 않은 근교의 공원에서 사람들이 산책도 하고, 조깅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ATV 타고,  말도 탄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의 한강공원이나 부산의 을숙도 같은 곳에서 말을   있다고 상상하면   같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기승비의 일부가 지역환경  사용되는 제도적인 부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의 이해와 동의가 바탕이 돼야 한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동물과 함께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총을 받아야 하고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어디 승마장이 생긴다고 하면 냄새 난다고 반대시위부터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런 인식을 무작정 비난할 수도 없다. 유럽에는 유럽식의 문화가 있고, 우리는 우리식의 문화가 있는 것이니까.


산책을 나왔다가 말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만나도 서로 불편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유럽의 승마 문화가 부러웠다. 경마 중심으로 말 산업이 성장하면서 아직은 미숙하다는 우리나라 승마 문화를 바꾸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지만 이 절에서 내가 일궈 놓은 것들이 많았고 다른 절로 가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이미 긴 가방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 산업 분야로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을 가볼까 생각도 했었다. 우리보다 승마가 발달한 나라에 가서 신문물(?)을 배워와야겠다는 신사유람단 같은 투지가 불타올랐다. 2022년 겨울의 파리 여행을 내 인생의 세컨드 임팩트라고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다.


이번 알자스 여행은 그 첫 단추라고 해도 좋았다. 일주일동안 내내 말만 타는 여행. 유럽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몇박 몇일 동안 이어지는 외승'. 그걸 경험해볼 기회였다. 그럼 다음에는 예약 신청서의 온갖 질문에도 Yes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게 생길 것이고, 라벤다밭도, 오로라투어도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겨우 상상만 해보는 드넓은 승마의 세계에 발끝이라도 조금 담궈볼 수 있는 차원의 문이 열리려는 참이었다.




알자스까지 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최종 목적지인 승마학교는 벨몽(belmont)이라는 산골마을에 있었고, 그 산골마을에 가려면 우선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란 도시로 가야 했다.


스트라스부르는 대체 어디 붙어 있는 건가 싶어 구글지도에서 검색을 해보니 프랑스의 동북쪽,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이었다. 파리보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더 가까웠는데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시외버스를 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시간은 약 네 시간. 인천공항에서 평창 읍내로 가려고 하는 외국인들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었다.


다음 문제는 스트라스부르에서 벨몽까지 어떻게 가느냐였다. 승마학교에서 픽업 서비스를 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비용이 너무 비쌌다. 비행기값도 두배로 뛴 마당에 다른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찾아보니 스트라스부르역에서 기차를 타면 승마학교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Rothau역까지 갈 수 있었다. 나중에 도착해서야 알았지만 Rothau역은 정말 작고 소박한, 택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시내버스는 하루에 2번 정도 올 것 같은, 그야말로 '시골역'이었다. 거기서부터는 승마학교의 픽업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한건 참 잘한 결정이었다.


최종목적지인 승마학교까지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 Rothau역


돌아오는 여정은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 다시 스트라스부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출발시간까지 약 2시간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다. 프랑스나 독일 모두 입국 전에 코로나검사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진작 없어졌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출국 48시간 이내에 받은 음성확인서가 있어야 했는데, 벨몽의 산골마을에는 그런 검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다시 스트라스부르까지 나오거나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주어진 약 두 시간동안 공항 검사소를 찾아 검사하고, 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짐을 붙이고, 출국 심사와 몸 검사를 받은 후 출발 게이트까지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루 말 타는걸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두 시간만에 이 모든걸 해치우는 도박을 해볼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했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예약할 때 신청자가 나 한 사람뿐이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 입장에서야 유럽이라는 곳이 몇달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 대단한 여행지지만, 유럽 사람들에게는 평창에 말 타러 가듯, "이번 주말에 알자스로 말이나 타러 갈까?"할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반드시 일주일 단위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주말에만 잠시 왔다가는 사람들, 또 지나가다 하루 잠깐 들른 사람들로 알자스의 승마학교는 지루할 새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 알자스의 아름다운 시골마을에 위치한, Cheval Alsace 승마학교를 찾은 첫번째 한국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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