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름다운 주말, 우리 동호회 사람들은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됐다. 정조대왕 능행차를 재현하는 행사에 '말 타는 역할'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고보면 인간이 말을 타는 모습을 필요로 하는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있는 것 같다. 방송가에서도 말을 탈줄 아는 스탭들은 종종 사극 촬영 때 엑스트라로 동원된다는 모양이다. 그 이후로 TV나 영화에서 말이 달리는 장면이 나오면 줄거리보다 말타는 사람들의 자세 따위에 더 시선이 가는 주객전도의 시청모드가 되곤 한다.
이번 섭외는 동호회 코치님을 통해서 들어온 제안이었다. 이럴 때 보면 교관님들이나 말을 좀 오래 타신 분들은 서로가 서로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느낌이다. 여섯 다리만 건너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지만, 말을 탈 수 있으면 두 다리 정도만 건너도 되는 지름길이 생기는 듯 하다.
정조대왕 능행차는 창덕궁에서 출발해 화성시에 있는 융릉까지 이어졌던 왕의 행렬을 재현하는 행사였다. 융릉은 사도세자라는 이름이 더 유명한 정조대왕의 아버지, 장조의 능이다. 지금은 정조의 능과 함께 '융건릉'이라고 불린다. 정조는 아버지의 능을 이곳에 새롭게 만들고 무려 60km에 달하는 거리를 13번이나 다녀왔던 걸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재현하는건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정조가 어머니와 두 여동생을 모시고 떠난 1795년의 행차였다. 물론 재현 행사에서 하나의 무리가 저 긴 코스를 모두 소화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의 강북, 강남구간이 나뉘어져 있었고 수원시 구간과 화성시 구간도 별도였다. 실제 정조대왕의 화성행차는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현대에도 첫날은 서울, 하이라이트가 될 둘째날은 수원과 화성에서 행사가 열렸다.
주요 배역인 정조대왕, 혜경궁 홍씨, 청연군주와 청선군주(*정조의 여동생들)는 특별히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분들이셨다. 내가 사는 동네도 정조대왕의 행차가 지나가는 중요한 길목이어서 구민들에 한해 주요 배역 오디션에 도전할 기회가 있었지만, 저 4명의 주연들 중에서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은 정조대왕이 유일했다. 나머지 궁중여인들은 (바퀴가 달린) 가마를 타고 호박마차 탄 신데렐라처럼 우아하게 앉아 시민들의 인사와 이따금씩 들어오는 사진촬영 요청에 응하는 공주님 역할이었으나 그건 별로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조대왕 역은 남성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아니, 요즘 세상에 남자를 여자로 꾸미고 여자를 남자로 변장시키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잖아요? 조선시대 왕 중에 유일하게 문무를 겸비했던 엄친아이자 본인보다 똑똑한 신하가 없어서 늘 "공부 좀 하시라"며 잔소리를 했다던 먼치킨 정조 역할을 뽑는데 생물학적인 성별의 제한을 두다니요.
동호회에서 100% 말타는 역할이 보장된 알바 기회가 없었다면 나는 진심으로 구청에다가 민원을 넣을 뻔 했다. 그렇다. 우리는 출연료까지 약속돼 있었던, 말을 탈줄 모르면 하지 못하는 역할에 당당히 캐스팅된 조연들이었다.
화성시 구간에 배정된 우리 동호회 사람들은 아침 7시반까지 화성시 어딘가로 모이라는 지령을 받았다. 비소식이 있었지만 그래도 행사는 예정대로 강행됐다. 비 때문에 취소한다고 했으면 그건 그거대로 실망이 컸겠지만, 행사 첫날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가 둘째날 아침이 되자 꾸물꾸물해진 하늘을 보니 마음이 영 뒤숭숭했다. 행사가 임박해서까지 제대로 된 안내도 해주지 않았던 공무원들에게 화도 나 있었고, 이런 날 구경나오는 사람들이나 있을지 걱정도 앞섰다. 주말 아침에 출근하는 기분도 들어 어쩐지 귀찮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200년 전 왕가 일행을 직접 수행했던 신하들의 기분도 이랬을까. 아니면 우리의 먼치킨 정조대왕님은 빠른 결정과 명확한 지시와 충분한 보상으로 이런 불만들을 빠르게 잠재우셨을까.
어쨌거나 우리는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채 화성시로 향했다. 집합장소에 도착하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도착해 있었고 말 수송차들도 보였다. 말들은 답답한건지 궁금한건지 연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먼길 달려오느라 얘네들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았다.
의상은 생각보다 멋있었다. 처음에는 무당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모자도 쓰고 활도 매고 칼도 들고 나니 제법 왕실 근위대 폼이 났다. 하지만 이렇게 치렁치렁한 옷을 입은 것만도 불편한데 무기까지 든 채 말을 타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갑자기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말을 데려온 승마장 교관님이 "이 말 순해요"라고 하면 그 말은 순식간에 품절(?)이 됐다. 어떤 말은 선수용이라서 아무나에게 줄 수 없다며 시합 나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기도 했다. 나는 맨 뒤에 서서 나보다 더 불안에 떨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말 저 말 다 양보하다보니 정작 내가 탈 말을 못받은 상황이 돼 있었다.
"세 분 중에 제일 잘 타시는 분이 이 말 타시면 돼요."
나처럼 말을 배정받지 못한 사람이 2명이 더 있었는데, 이리저리 방황하던 우리에게 스탭 한분이 말 한 마리를 데려오셔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명 중 한명은 연신 말 상태에 대해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명은 이제 말을 15번 타봤다고 고백했다. 결국 그 말은 내 차지가 됐는데, 나중에 어디로 돌려보내야 할지 알기 위해 승마장 이름을 물어보니 그 스탭 분은 본인도 알바라서 잘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버리셨다.
걱정과 달리 처음에는 발걸음도 가볍고 똥꼬발랄하게 움직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고 가만히 서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녀석은 좀이 쑤시는지 도무지 가만히 있질 못하고 다른 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후진을 하더니 여기저기 발길질을 하기도 하고 옆에 있던 다른 기승자분의 활을 물어뜯기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겨우겨우 진정시켜가며 연신 "죄송합니다!"를 외쳐댔다. 그러자 아까 나에게 말을 주고 가셨던 알바 분이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서는 이렇게 충고하시곤 또 사라지셨다.
"그 말 뒷발* 차네요! 조심해서 타세요! (Good Luck~)"
(*말의 뒷발차기는 육식동물도 쫒아내는 위력을 가진다. 잘못 얻어맞으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죽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이후로도 끊임없이 옆 말한테 시비걸고 뒷발차고 그 와중에 앞에서 오는 차는 무서워하고 그러다 갑자기 속보로 냅다뛰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말과 씨름을 하며 장장 다섯 시간을 버텨냈다.
내리다 말겠지라는 바람과 달리 점점 강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정신줄을 놓아가고 있던 우리는 덩달아 같이 비를 맞으면서 연신 "멋있다"고 환호해주시던 시민분들 덕분에 다시 기운을 낼 수 있었다. 날씨 때문에 구경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였다. 다들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어떤 꼬마 아가씨는 예쁜 한복을 차려입고 우리를 반겨주셨다.
실제 역사에서도 행차 둘째날에는 비가 왔었다고 하니, 이보다 완벽한 역사 재현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이건 사도세자의 저주인걸까. 무려 그때는 2월의 겨울날씨였고 백성을 너무 사랑했던 우리 정조대왕님은 회갑연이 끝나서도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느라 8일동안 궁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200년 전의 신하들보다 우리가 팔자는 더 나았다.
내년에 또 하겠냐는 질문에 행차를 하는 동안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지만 어느새 기억은 조금씩 미화돼 즐겁고 재밌었던 추억으로만 남았다. 이름도 모르고 헤어졌던 사고뭉치 내 말도 은근 그리워졌다. 말을 탈 수 있는 덕분에, 무엇보다 동호회 사람들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아주 특별한 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