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 Jul 12. 2022

마계(馬界)에서 만난 사람들

팀장님은 정말 약속대로 아침 8시30분에 우리집 앞으로 오셨다. 1분도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 황송하게도 팀장님의 사모님이 여기까지 라이드를 해주신 거였다. 그만큼 다른 때는 팀장님이 가정에 무척이나 헌신하신다는 것이 동호회 회원들의 증언이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동호회한다고 밤늦게까지 밖을 싸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주말에 1박 2일로 외승을 떠나는 남편을 사모님이 손수 바래다 주기까지 하시다니. 도대체 평소에 얼마나 헌신을 하시는 걸까, 궁금해졌다.


첫 동호회 정모에 참석하고 2주일이 지났다.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고속도로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부지런함을 장착한 나들이객으로 이미 북적거리고 있었다. 예상 소요시간은 평소보다 많은 세 시간 남짓. 그말인즉 아직 '덜 친한 사람' 혹은 '잘 모르는 사람'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팀장님과 단둘이서 세 시간 혹은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침묵의 공기를 견디지 못하는 나는 어떻게든 화제거리를 찾아내려 애쓰는 편이다. 하지만 평창으로 가는 차 안은 생각보다 오디오가 비는 순간이 많지 않았다. 말에 미쳐 있는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으니 그냥 주구장창 승마 이야기만 하게 됐고, 세 시간의 자동차 여행을 지루하지 않게 하기에 충분했다.




'프리런'의 시작은 승마장 근처 어느 막걸리 집에서 성사됐다고 한다. 팀장님은 승마를 시작하고 1년 사이에 기승횟수 200회를 돌파한, 정말 나보다도 더한 승마장 NPC셨다. 그러다보니 외승을 가고 싶어졌지만 내가 그랬던 것과 똑같은 벽에 부딪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혼자서는 외승을 갈 기회가 별로 없다는 바로 그 벽. 같이 말 타러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동호회를 해볼까,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그날도 승마장 고인물, 아니 덕후, 아니 승마 애호가 답게 말을 타러 가신 날이었다. 팀장님이 원형마장에서 왕초보 시절을 보낼 때부터 레슨을 해주신 코치님이 있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셨다고 한다.


"회원님, 동호회 한번 해볼 생각 없으십니까?"


팀장님 말로는 그 전까지 단 한번도 동호회의 'ㄷ'자도 이야기하지 않았었다는데, 머리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 마냥 코치님이 동호회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기승을 마치고 둘이서 막걸리집으로 가 지역 술인 '오봉막걸리' 12통을 비우고 조촐한 동호회 창단식을 마쳤다고 한다. 2021년 7월 9일, 약 1년 전의 일이었다.


이게 팀장님 버전의 프리런 창단 과정이다. 코치님 버전은 이렇다.


"같이 술먹고 놀고 싶었거든요."




동호회를 만든다는 큰 그림에 합의를 본 다음 해야 할 일은 동호회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처음에 팀장님이 제안하신 이름은 너무나도 40대 감성인 '인덕원초보승마클럽'. 정말 이 이름이었다면 나는 절대 가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곧 40대가 되는 마당이지만 굳이 동호회 이름까지 나이에 어울리게(?) 할 필요는 없잖아. 그러자 아직 20대인 코치님이 크게 비웃으며 제안한 이름이, 지금 동호회명인 '프리런'이다.


엘리트 체육인이셨던 코치님이 아는 승마는 욕 먹으면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동호회를 만들고 다같이 제주도로 외승을 가 해변을 달렸을 때 처음으로 말을 타면서 즐겁다, 라는 기분을 느꼈을 정도라니. 프리런이라는 이름에는 뭐 대단한 뜻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냥 자유롭게, 행복하게 말을 타고 싶었다는 코치님의 소박한 바람을 20대 감성의 콩글리쉬(?)로 표현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엘리트 체육인 습성은 쉽게 버릴 수 있는게 아닌건지, 지금도 동호회 사람들이 말귀를 못 알아듣고 (코치님 표현에 의하면) '거지같이' 말을 타면 샤우팅을 질러대는 통에 늘 원성이 자자하긴 하다.


프리런 사람들과 함께 한 한국에서의 첫 외승 @평창700빌리지


저녁시간이 가까워질 즈음 후발대로 출발한 사람들이 모두 펜션에 모였다. 그리고 또 다시 나에게는 '잘 모르는 사람'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낯선 이들과 밥을 먹고 술을 마셔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노래방기계를 갖고 다니시는 코치님 덕분에 음주뿐만 아니라 가무도 사랑했던 20대 시절의 나를 소환해야했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는 카풀조차 꺼려했던 나는 더 이상 없었다. 그저 말 이야기를 이렇게 실컷 편하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 즐거움에 취해, 근 20년 지기들이나 기억하는 나의 봉인해제된 모습을 그날밤 프리런 사람들에게 오픈하고 말았다.


왜 굳이 팀장님이 카풀을 위해 사모님 찬스까지 쓰셨는지 알 것 같았다. 이기심과 합리주의로 똘똘 뭉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과 공유하려 노력하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행복을 놓치며 살아온걸까.


소맥과 승마 이야기로 영혼까지 진하게 물든 그날 , 서울로 돌아갈 때는 내가 팀장님을  앞까지 라이드 해드리겠다고 선언했다.




"마계(馬界)에 한번 발 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든데."


승마에 진심으로 재미를 느끼고 파리여행에서 엄청난 승마 컬쳐쇼크를 경험한 후, 갑자기 말 산업에 관심이 생겨 무작정 찾아갔던 어느 농경제학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다. 교수님은 말 산업 연구를 안 하신지 좀 돼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도, 말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만나보고 싶다며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다. 그렇게 초면인 교수님과 한 시간동안 시간 가는줄 모르고 말 이야기를 했다. 다른 교수님이 오셔서 회의 들어가셔야 한다고 이분을 인터샙트 해가지 않으셨다면, 교수님과 말 이야기를 하다 막걸리 12통을 깠을지도 몰랐다.


내가 그동안 동호회를 기피했던 데에는 가장 큰 세번째 이유가 있었다. 그건 '동호회'라는 것을 할 정도로 열정을 쏟을 대상이 없었다는 것. 해 뜨는 시간에 맞춰 나가는 '일출승마' 코스를 가기 위해 12시가 넘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도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미친 짓을 함께하는 것이 이 마계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더 자유롭게, 즐겁게, 승마라는 것을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예감이 들었던, '다른 이들과 함께 한' 첫 외승이었다. (결국 한분은 기승 중에 어제 먹은걸 확인하셔야 했지만.)

이전 13화 굳이, 동호회에 들어가게 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