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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Jul 08. 2022

굳이, 동호회에 들어가게 된 이유

사실 나는 한번도 동호회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사회 부적응자는 절대 아니다. 한때 여행사를 다니면서 잊을만하면 한번씩 등장하는 진상 손님들 때문에 한동안 길거리에 지나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미워 보인 적(?)은 있었어도, 단체 모임이나 새로운 사람 사귀는 것에 심각한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아왔다.


그럼에도 동호회, 동아리 같은 모임을 기피했던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첫번째는 어떤 공통의 관심사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사실은 이성 간의 만남이 주 목적인 분위기 혹은 사람들이 있을까봐, 였다. 그렇다고 무조건 나한테 집적댈거라는 도끼병에 걸린 건 아니지만 작업이 걸리면 걸리는대로, 안걸리면 안걸리는대로 기분이 나쁠 것 같았다.


두번째는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을 뿐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낯선 사람들에 대한 나의 무관심이었다. 왜 잘 모르는 사람들과 굳이 함께 취미생활을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곤 했었던 것이다.




승마 동호회는 아주 많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동호회 이름들은 '말'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모든 말장난들을 보는 듯 했다. 말벗, 말로, 말랑말랑, 1인1마, 마왕(?) 등등. 승마장 예약 페이지에서는 정말 다양한 아재개그, 아니 동호회 이름들이 보였는데, 그 중에서 감독님이 나한테 추천해주신 동호회는 '프리런'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주말 아침 첫 2타임에 기승을 하고 집에 가려던 참이었다. 동호회에 가입해보라는 감독님의 제안에 나는 '굳이 왜?'라는 머리 속의 생각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보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때마침 프리런 회원 한명이 옆을 지나가고 있었고, 감독님은 또 굳이 불러 세워서 나에게 동호회 가입하는 법을 알려주라고 하셨다.


눈 깜짝할 사이에 너무 완벽하게 영업을 당한 나는 집에 돌아와 잠시 고민을 하다, 그 회원분이 알려준 대로 동호회 가입을 할 수 있는 어플에 들어가봤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평창의 한 펜션 이름과, 하얗게 눈이 덮인 산속을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줄지어 걸어가고 있는 사진이었다. 여긴 예전에 학교에서 MT 갔던 곳이잖아. 세상에, 여기서도 말을 탈 수 있었던가? (난 술 먹은 기억밖에 없는데)


그 사진 한 장은 동호회에 대한 나의 오랜 선입견이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와중에도 가입 버튼을 누르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몇번 외승을 가려고 알아봤지만 파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혼자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외승을 가려면 동호회 가입은 필수나 다름 없었다.


동호회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만든 한장의 사진 (출처: 프리런)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동호회에 가입을 하고 얼마 후, 외승을 간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장소는 요전날 봤던 평창의 그곳. 그런데 외승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달려 있었다.


'동호회 정모 참석자만 신청 가능'




동호회 정모는 매주 토요일 늦은 오후였다. 아침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썩 내키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일단 한번만 참석해보자는 마음으로 나갔다. 한낮의 열기가 아직 채 식지 않은 오후의 승마장 공기는 뜨뜨미지근했다. 한산한 아침 시간과 달리 사람도 많고 말들도 약간 지친 모습이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말을 탄다는건 승마의  다른 난제였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말에만 집중해도 정신이 없는 판국에, 다른 기승자의 속도나 방향은 물론 각각의 말들이 어떤 성격인지도 알고 있어야 했다. 누가 누굴 싫어한다거나, 뒤에 붙으면 발로 후려차니까 가까이 가면 안된다거나. 다섯명의 사람과 다섯마리의 말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실내마장을 처음 겪어  나는 마치 도로주행을 처음 나온 초보운전자가  기분이었다.


아침에 승마장을 전세낸 것 마냥 혼자 탈 때보다 영 생각처럼 되지 않아 당황스러움과 민망함이 온몸을 엄습했지만 외승을 가기 위한 미션을 하나 해결했다는 홀가분함이 더 컸다. 집으로 가려던 찰나, 이번에는 동호회 팀장님이 나를 붙잡으셨다. 저녁을 먹으러 다같이 가자는 것.


'아.. 그냥 집에 일찍 가서 쉬고 싶은데. 그런데 여기서 거절하면 나 되게 까칠하고 재수 없어 보이겠지?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니까. 가자, 가.'


망설이는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나마 그날 저녁 메뉴가 장어구이였다는 점이 이 온갖 낯선 자극들을 견뎌내는데 아주 큰 위안이 됐다.




당당히 외승 신청자격을 획득한 나는 동호회 공지글에 댓글을 달았다. 그러다 '카풀 비용'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당연히 자차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학교다닐 땐 늘 그랬으니까. 카풀이란건 차가 없거나 장거리 운전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것일뿐이었다. 사는 곳도 다르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몇 시간의 자동차 여행을 일부러 감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동안 내가 속해 왔던 집단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었다.


평창으로 출발하기 이틀전, 동호회 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첫날 제 시간에 출발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둘 밖에 없으니, 둘이서라도 한 차로 가자는 것이다. 팀장님과 나의 집은 누가 어디로 가든 불편하기 짝이 없는 동선이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팀장님은 본인이 아침일찍 우리 집앞으로 오시겠다고 했다.


헐. 굳이요?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걸까. 그 질문의 답을 알게 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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