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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Mar 22. 2022

영남알프스 노매드 (영축산)

영남알프스의 얼자(孼子)

영축산 (靈鷲해발 1,081m)


서자와 얼자

우리나라의 혈통주의에 "서얼(庶孼)"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서자(庶子)와 얼자(孼子)'를 합쳐 이르는 단어이다.  서자(庶子)는 양반의 남자가 양가나 중인의 여자를 첩으로 두어 낳게 된 자식을 말하며, 얼자(孼子)란 천민인 노비나 관기, 여사당 등등의 여자로부터 얻은 자식을 말한다. 그러기에 굳이 서열을 따지자면, 얼자는 서자보다도 한참 아래이다. 극히 예외적으로, 무수리의 아들인 영조는 아비가 왕이었는지라 얼자라는 멸시를 직접 받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역사서를 통해 보면 영조도  '얼자 콤플렉스' 속에 평생을 전전긍긍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등산객들이 잘 찾지 않는 고헌산을 일컬어
"영남알프스의 서자"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고헌산은 조선시대 언양현의 진산(鎭)이었고, 정상부 용샘에서 언양 일대의 기우제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현대 등산가들의 으로 고헌산을 "서자"라고 격하시켜 바라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뼈대 있는 가문이랄 수 있겠다.

서자인 고헌산보다 못한 얼자 취급을 받는 산은 따로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서자만도 못한 "얼자"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은
영축산이다.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 정말 천대받고 멸시를 견디는 곳이 영축산이라는 이유는 위치와 그 이름이다.

영축산 정상석


주소불명

먼저, 영축산의 행정상 주소는 '경남 양산시'이지만 영축산 능선의 슬픈 역사를 살펴보면, 오롯이 '울주군 언양읍'의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외국으로 입양된 후 버려진 한국 입양아 같다고나 할까.

단조성, 피못, 천지 못, 석퇴, 피밭등, 아리랑재, 꼬꼬랑재, 울렁메기, 호식바위, 금수샘, 은수샘 등등 숱하게 많은 전설이며 아픔은 오롯이 조선시대 언양현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양산시가 애써 스토리텔링이나 테마길 조성 등개발 예산 편성을 하지 않았고, 언양에서는 행정적 주소지가 양산시이니 굳이 관리 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영축산의 거의 대부분이 통도사의 소유이니 무턱대고 특정 종교의 토지를 대상으로 행정적인 지원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물론, 대한민국 3대 사찰로 법력을 떨치는 통도사 입장에서 보자면, 부처님의 진신리 위에서 너무 많은 등산객들이 소란을 떨어대는 것이 반가울 리도 없을 것이다.

더해서 산림청에서는 "가지산 도립공원 영축산 구역"이라 관리를 하고 있으니, 나열한 어정쩡함들이 가져다준 설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가지산 도립공원 권역 등산안내도. 산림청


산에도 제 이름이 있다

영축산, 영취산, 축서산, 취서산, 영서산... 1,000m 남짓한 산 하나를 두고 부르는 이름도 참 다양하다.

신령스럴 '영靈', 독수리'鷲취(축)', 깃들일'서栖'...

불리는 이름이야 어떻든 그 이름들이 품은 뜻만으로도 영험함이 가득 깃든 곳이다.

이름을 두고 은근히 산악단체 간의 세력다툼 까지도 있었고, 지금도 영축산보다는 영취산이나 취서산을 선호하는 산객들이 많다. 이렇게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연유는 독수리'취鷲'자를 불경에서는 '축'으로 읽고, 옥편에서는 '취'로 발음하기 때문에 빚어진 혼선이다.


분명한 것은, 영축산은 통도사의 수행 영역이니
불가(佛家)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부처님이 화엄경(혹자는 법화경)을 설법하셨던 북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는 '영축산'정상에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신령스러운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있고, 그곳과 산세가 흡사하다는 연유로 자장율사가 이곳에 통도사를 창건했다는 통도사 창건설화가 있다. 그래서 영축산이든 영취산이든, 이 이름을 가진 산들은 전국 어디에 있든 간에, 정상 부근에 독수리가 날개를 편 것 같은 암릉이 존재한다.

통도사의 창건설화와 통도사의 소유지이니, 2001년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는 불가에서 읽는 방식을 존중하여 '영축산'으로 공식화하였다.


간월산은 부처님 머리, 신불산은 부처님 몸통, 영축산은 부처님 발치라고 한다. 그래서 기가 머무는 부처님 발바닥에 통도사가 자리잡고 번창하고 있다. 여하한 통도사와 영축산은 따로이 생각할 수 없는 불여일체의 인연이다.

인도 영축산 정상의 야단(野壇)과 독수리 바위

다양한 이름과 혼란스런 주소, 이런 지경이니 영축산이야말로 실로 영남알프스의 자가 아닐런가.  그 많은 설움과 차별들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으니 어금니를 앙다문 듯한 인고와 수행의 기상이 감돌고 있다. 모든 화를 다 제 탓인 양, 모든 설움을 다 제 것인 양...


남은 이야기들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던 시살(矢撒)등

도가 터진 도태정골, 도를 통한 통도골

신동대 오만의 끝에서 겸손을 만나다

단조봉 석퇴와 십리 억새 상벌

빨치산 하준수의 찝차



다음 이야기 : 호랑이가 엎드린 산, 운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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