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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Apr 20. 2022

영남알프스 노매드 (운문산)

虎踞, 호랑이가 웅크린 산

운문산(踞山 해발 1,188m)


호랑이가 놀던 산, 호거산

운문산이라고 알려진 이 산의 본디 이름은 호거산(虎踞山)이다. 범봉, 호거대, 호식 바위, 범굴 등등 호랑이 관련한 이름과 전설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측컨데, 필시 산의 지형 만을 본 뜬 이름이 아니라 호랑이가 실제 살았던 곳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호랑이가 걸터앉은 호거산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산의 북쪽 아래 너른 공터에 자리 잡은 "운문사"라는 사찰이 워낙 전국적인 유명세를 가지고 있다 보니, 지역 산악회가 임의로 운문산이라는 이름으로 작명을 해서 정상석을 세웠다. 지역산을 유명 사찰의 이름에 편승해 홍보하려는 계산된 상술이었지만 그 의도는 아주 주효했다. 내로라하는 전국의 등산 애호가들 중에서도 대부분이 청도의 호거산은 몰라도 청도 운문산은 알고 있으니, 그야말로 이름을 바꿔 대박이 난 것이다.

그런 실정이다 보니 지금 운문산이라고 쓰여 있는 정상석 옆에는 작은 글씨로 호거산이라는 본명을 병기해놓았다.  운문사 출입문이랄 수 있는 범종각의 현판에도 "호거산 운문사"라고 되어 있으니 , 틀림없이 호거산이 올바른 이름이다.

운문사 범종각 현판

하지만, 사실 여부가 무슨 소용이랴. 우리에게는 전 세계의 모든 소형 화물트럭이 "포터"이고, 모든 승합차가 "봉고"인 것처럼 이미 운문산이라는 이름이 고착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어거지로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오버랩 시켜 본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운문산이라 불러주었을 때

그는 우리에게로 와서

운문산이 되었다.


첩첩산중

영남알프스 일대에서 마지막 호랑이가 잡힌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1960년 12월 22일 가지산 붉은 바위에서 한 마리의 표범 암컷이 포획되었다.

가지산 마지막 표범, 사냥꾼은 왼쪽 팔을 잃는 사투 끝에 사냥에 성공했다. (영남알프스학교 기록)

며칠 밤낮을 죽은 암컷을 찾아 울부짖었다던 수컷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 개체에 대한 포획 기록은 없다.

"영남알프스학교""신불 연구회"에 따르면, 영남알프스 전체의 마지막 표범은 1983년 재약산 산자락에 설치된 올무에 희생된 것이 마지막 공식 기록이다.


그것이 공식적인 마지막 기록이었다.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영남알프스에서 호랑이와 표범의 포획 기록은 없다. 한국 호랑이는 시베리아의 타이가 숲 속으로, 표범은 연해주 지역으로 생태계 망명의 길을 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1996년과  2002년, 운문산을 헤집고 다니던 약초꾼이 바위 위에서  자신을 노려보던 표범으로 인해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했다는 두 건의 목격담이 채록되었다. 운문산의 속살을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워낙 산이 깊고 넓은 곳이다 보니, 약초꾼이 환영을 본 것이라고 섣불리 예단할 수만은 없다. 약초꾼은 자신이 본 것을 얘기했고, 기록자는 그 이야기를 기록했을 뿐이다. 진실 여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만큼 운문산 일대가 첩첩산중이라는 것이다.

호거대 조망, (사진 중앙 암릉)

아랫재가 가지산과의 경계라고는 하지만, 산 아래로 내려서면 가지산과 운문산을 명확하게 경계 지을 수는 없다. 심심이골, 천문지골, 학심이골 등등 십여 개의 깊은 골짝이 뒤섞여 있고, 한여름에도 서늘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숲은 울창하다.

1967년 운문산에 침투한 무장공비와 격투를 벌이던 지역 주민이 희생을 당할 정도이니 가히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따라서, 운문산과 가지산 북릉 일원이  "생태계 보호를 위한 삼림 유전자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서 여타의 산과 비교하면, 운문산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은 산이다. 경남 밀양시, 경북 청도군, 울산광역시 울주군, 경북 경주시 등등이 경계를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9봉 인증 이벤트만을 목표로 해서 남명 마을의 최단거리를 이용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운문산은 그렇게만 오르내릴 단순한 산은 아니다. 이어진 구만산, 문바위, 억산, 범봉, 가지산, 백운산과 연계해 길고 깊게 겪어 볼 산이다. 혹시라도 산행 중에 조난을 당해 119 산악구조대를 부른다고 하여도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는 깊은 산이 바로 이곳, 운문산이다.


남은 이야기들

청운과 백운이 드나드는 문, 운문!

닥나무가 지천이던 딱밭재

허준의 해부 실습장, 손가굴

억산 대비사와 깨진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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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 : 신라 흥덕왕의 약방, 재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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