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산을 오르든 그 이름의 의미를 알고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산을 삶의 터전으로 살았던 지역민들의 애환이 녹아 있고, 그 이름을 통해 산이 우리에게 주려는 교훈을 새겨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산 이름은 하루아침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그 어원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물론, 역사시대에 이르러 풍수지리학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가공되어 그 어원이 비교적 확실한 산들이 있기도 하다.
황제의 산
전설에 따르면, 상고시대의 중국 대륙에 3황 5제가 있었다. 진시황제 같은 독재적 권력가라기보다는 백성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이상적인 제왕들을 일컬으며, 특히 皇(황)은 "크다(大)와 아름답다(美)"라는 뜻을 동시에 포함한다.
역사 시대인 하(夏) 나라 이전이므로 선사의 이야기에 해당되며,3황은 3명의 황제라는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말하는 바, 천문과 지리,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두루두루 출중한 능력을 발휘했던 리더를 지칭했을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불의 이용, 의식주의 해결 등등 인간 생활과 밀접한 문명을 수립한 위대한 인물들이며 총 7명의 3황과 10명의 제왕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종교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도교에서는 "천황"을 3 황 중에 으뜸으로 보고 하늘의 주인, 즉 옥황상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민간에서는 천황과 천왕이 엄밀한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으니 천황이든 천왕이든 옥황상제를 지칭하는 것이다(한데 어쩌다가 간악한 섬나라 왜구들의 두목이라는 작자가천황이라는 고귀한 이름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조선 팔도에 천황봉 또는 천황산, 천왕산, 천왕봉이라는 이름은 모두 56곳이 있다고 한다.
그 이름들이 산세를 말살하려는 간교한 일제의 잔재라는 얘기도 있고, 옥황상제가 살기에 충분한 산이고, 그저 산중의 산, 산의 왕이라는 의미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부산, 울산 등등 도시와 가까운 밀양의 천황산은 워낙 잘 알려진 곳이다 보니 여전히 대표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진실의 방으로
1980년 인사동의 어느 고서화점에서 <산경표山經表>라는 고서(古書)의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1700년 대 중반 조선의 실학자인 여암 신경준 선생이 조선의 산과 강을 정리하였다고 그 제목과 간략한 소개만 기록으로 전해져 왔는데, 1913년 민족 애국 계열의 조선 광문회가 발간한 영인본이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후대에 재 발간된 영인본이다 보니 첨삭이나 진위의 문제가 제기되고있다.
가령, "1860년 대의 대동여지도에서는 재악산(=재약산)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던 밀양의 천황산이, 1913년 조선 광문회의 산경표 영인본에서는 등장한다"는 것 같은 디테일한문제들이다.
이 기록을 제시하면 이것 같고, 저 주장을 접하면 저것 같아서, 생각도 많고 귀가 얇은 필자로써는 여전히 난해한 문제이다. "천황"이라는 이름이 사명대사를 모신 표충사의 충만한 기를 짓누르기 위한 일제의 간악함인지, 산중의 으뜸 산인 천황산인지 잘 모르겠다.
이 기록이든 저 주장이든 마석도 형사가 운용하는 진실의 방에서는 판가름이 날까.
산 너머 언양 사람들이 신불산 단조봉을 "왕봉"으로 불렀다는 것을 감안하면, 빙 둘러 1000 고지 이상을 거느린 사자봉을 "천황"으로 높여 지칭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또한, 천황산과 재약산 7부 능선 일대인 사자평에 일본인들이 스키장을 건설하려 했던 역사적 사실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자신들의 왕을 위해서는 '덴노 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 万歲)'를 외치며 목숨도 기꺼이 바칠 만큼 자기들의 두목을 신성시 여기던 자들이, 천황이라는 신성한 이름이 붙어있는 산을 훼손해서 스키장을 만들려했다는 일이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 측면이 있다.
옥황상제의 산
천황산의 북쪽은 밀양 얼음골이다. 그러다 보니 일교차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서 산 정상부는 수시로 구름이 가득 찬다. 운해가 사자평을 가득 메우는 날씨에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구름의 바다가 펼쳐진다. 또한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뇌우를 가장 빈번하게 경험할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아랫동네에서 보자면 당연히 옥황상제가 신선들과 어울려 바둑을 두거나, 용을 길들이는 훈련장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은 얼음골 일대에도 이상 고온 현상이 밀어닥쳐 예전 같은 고랭지 일교차를 만나기는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전해져 오던 신성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자욱한 운해가 갈 길을 감추어 버리는 날에 천황산에 드는 것은 가히, 등산이 아니라 1일짜리 단기 입산수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모른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록 아무도 본 적은 없지만 옥황상제의 존재 여부를 누가 장담할 것인가. 만일, 영남알프스 9봉 중에 옥황상제가 실존한다면 영남알프스 중에 그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첩첩산중, 오리무중의 경지에 속해 있는 천황산임을 반드시 기억하자.
천황산을 내려서며 바라 본 재약산 수미봉 방향
남은 이야기들
산 이름을 중심으로 연재했던 영남알프스 9봉 겉핥기가 끝이 났다. 산마다 더 다루고 싶은 당면한 시사 문제도 있고, 소개해주고 싶은 코스와 들려주고 싶은 전설들도 있다. 또한 각 계절마다 최고의 풍광을 보여 주는 코스를 안내해주고 싶다.
영남알프스를 찾는 모든 이들이 진정한 알프스인이 되길 희망해보고 필자가 소개한 영남알프스들이 조금이라도 길라잡이가 되길 기대해 본다.
꼭 알리고 싶은 이야기 :
영남 알프스의 사랑방, 사단법인 천화
영남 알프스의 오디세이, 배성동 작가
영남 알프스 범 연구회
*브런치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일정 정도의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매주 글을 적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생계와 취미를 병행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물론, 이 모두가 게으른 본성 탓입니다.
산행 중에 얻어 들은 전언들을 정리하다 보니, 연재 내용 중에 역사 기록적인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무감으로 쓴 글은 여기서 마감하고, 더 알리고 싶은 내용은 추후 산을 오르는 듯 자유로운 기분으로 계속 적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가지산에서부터 천황산에 이르기까지 함께 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