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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개비 Aug 05. 2020

라면 (2)

오리지널의 유혹

가지산 1240m 정상 대피소의 간이식

다소 오래 전의 일입니다. 어떤 방송국의 예능에서 당시  글래머로 유명세를 떨치시던 김혜수 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면은 역시 봉지에 든 것만 넣어서
끓여야 맛이 있죠


그녀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도저히 뗄래 야 뗄 수 없는 양파, 대파, 계란, 심지어는 라면과 완전체 조합으로 평가받는  김치조차도 넣지 않는 것이 "라면의 진짜 맛"을 내는 요리법이라고 했습니다.

지극히 공감이 가는 얘기입니다. 특히 가지산 정상 대피소 라면을 맛보신다면 무조건 공감하실 얘기입니다. 영남알프스 최고봉, 해발 1,240m인 가지산 정상에는 허름한 모양새의 대피소 겸 간이식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판매하는 라면은 말씀드린 대로 '봉지 째' 그대로와 물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곁반찬인 김치나 깍두기, 단무지 조차도 공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봉준령을 오른 고단함의 뒤끝이라서인지 그 맛은 참으로 "라면답다"입니다.
물론, 황금빛 찬연한 양은 대접의 광채도 맛을 더하긴 해줍니다만 질그릇에 담아 낸다한들 오리지널의 맛이 변할 리가 있겠습니까.


물론,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자신들이 준비해 온 여러 가지 곁음식들과 막걸리까지 마련해내지만, 아무래도 이 집의 시그니처는 봉지째 그대로인 라면입니다.

김혜수 씨가 말씀하신바대로 라면을 조리할 때, 이것저것 외부 재료들을 넣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호불호를 판단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양파를 넣으면 양파 맛이, 김치를 넣으면 김치 맛이 라면의 "진짜 라면"맛을 감추어 버리기 때문이겠지요.

노란 양푼이에 옴팡지게 자리 잡은 '오리지널 라면'이 진짜 라면인 것 같네요.
예전에는 작은 코펠과 버너를 들고 가서 직접 끓여 먹기도 했었는데 "자연보호, 산불조심, 환경사랑" 등의 '문명적 산행에 관한' 각종 선전 선동이 야생에서의 취사행위들을 더없이 야만적이고 몰상식한 행위들로 격을 낮추어버렸습니다.

오리지널의 치명적인 유혹.
넌 정말 라면 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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