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예로 상대방과 어떤 경쟁 게임을 한다면 우리는 그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는지 잘 봐야 한다. 공격을 할 건지 수비를 할 건지 아니면 정찰을 하는 건지. 즉, 상대방의 행동을 잘 보면 내가 어떤 것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이걸 관찰이라고 하자.
연극학은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것이 연극이 예술에서 학문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연극은 행동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의 행동, 오필리어의 행동, 거어투르의 행동, 클로디어스의 행동 등 각 등장인물의 행동들이 엮이고 엮여 사건이 되고, 사건들이 모여 극을 이룬다. 연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본질이며, 최소 단위의 행동을 분석해야 한다.
다음의 예는 러시아의 위대한 극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갈매기>의 첫 장면이다.
... (중략)...
마샤와 메드베젠꼬가 산책에서 돌아오며 왼쪽에서 등장
[메드베젠꼬] 당신은 왜 언제나 검은 옷만 입고 다니죠?
[마샤] 이건 나의 생에 대한 상복이에요. 난 불행한 여자니까요.
[메드베젠꼬] 왜 그렇죠? (생각에 잠긴다) 이해가 안 가는군요―당신은 건강하고, 비록 당신의 아버지는 부자는 아닐지라도, 꽤 넉넉한 편인데 말입니다. 당신에 비하면, 난 훨씬 살기가 괴로워요. 나는 한 달에 겨우 23 루블밖에 못 받는 데다가, 퇴직 적립금까지 공제당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상복 같은 건 입 지 않아요.
(두 사람, 앉는다)
[마샤] 돈 같은 건 문제가 아니에요. 가난한 사람도 행복할 수는 있으니까요.
... (중략)...
간단한 예로 이 장면을 잠시 살펴보면, 마샤라는 여자는 늘 검은 옷만 입는 행동을 한다. 메드벤젠 꼬는 그런 마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은 가난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마샤는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이 장면만 보면 이들이 왜 이런 행동과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 이 작품 전체를 봐야 이해할 수 있다. 메드벤젠 꼬는 마샤를 좋아하고, 그는 마샤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마샤는 부정적 생각만 하는 메드벤젠꼬(직업:교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리고 마샤는 다른 남자(뜨레플레프)를 사랑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뜨레플레프(직업:극작가)는 니나(젊은 여배우 지망생)와 연인이다.
이 정도만 분석해도 마샤가 검은 옷만 입고 다니는 행동의 원인과 의미를 알 수 있다. 마샤는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여 자신과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이 슬프고, 그건 마치 죽음을 선고받은 것과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샤는 ‘내 인생의 상복’인 검은 옷만 입는다.
배우와 연출이 하는 일이 이것이다. 인물의 행동을 분석하면서 행동의 원인과 의미를 찾아내 우리의 삶을 거울처럼 비추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육아와 무슨 상관인가?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서이다. 갑자기 화를 낸다거나,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청소기 소리에 놀라 운다거나. 등등. 이런 경우 부모 입장에서 당혹스럽기도 하다. 내 말을 안 듣는 거 같아 화가 나기도 하고, 아이의 행동이 꼭 반항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대본을 분석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있다. 그건 모든 행동에 “왜? Why”를 붙여 생각해 본다.
마샤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왜 이런 말을 할까?
왜 이런 생각을 할까?
메드벤젠꼬를 왜 싫어할까?
그를 싫어하는데 왜 같이 산책을 했을까? 등등등.
모든 행동에 ‘왜’를 붙여 생각해 보면, 점점 그 답에 가까워질 수 있다. 대본 속에서 사는 사람의 행동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관찰하고 분석하여 그 원인과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걸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의 행동에 접목시켜 보는 것이다.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 순간만 볼 것이 아니라 넓은 시각에서 아이의 행동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이가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왜 갑자기 울지? 어제는 안 울었는데? 뭐가 다르지?
왜 잘 안겨 있다가 몸을 뒤집지?
왜 표정이 안 좋지?
아이의 행동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자료가 필요하다. 연극은 모든 자료가 대본에 있다.
그러나 삶에서 대본은 없다. 그 순간만 있을 뿐이다.
그 순간순간 아이를 잘 관찰하면서 그 자료를 쌓아가야 하는 것 같다.
아이를 잘 관찰하다 보면 아이의 행동의 원인이 보일 수 있다.
아, 어제는 엄마 옆에서 청소기를 돌렸는데, 오늘은 밤에 엄마가 곁에 없어 무서운가 보구나. 얘는 엄마가 가까이 없으면 두려운가 보다.
아, 잘 안겨 있다가 몸을 뒤집었는데 트림을 하네? 속이 안 좋아서 뒤집었구나.
졸리면 표정이 이렇구나.
등 등 등
관찰을 통한 아이의 행동 분석은 아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부모가 낳은 자식이지만 아이는 새로운 인격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의 전부를 알 수 없다. 육아 중 가장 힘들 때, 잠 못 자서 예민할 때 아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포착되는 부모는 화가 먼저 난다.
쟤는 왜 저러지? 왜 이렇게 산만해?!
대사로만 보면 좋은 반응이다. 왜? 왜? 질문을 던졌으면 찾아야 한다. 왜 산만하고, 왜 그런지. 관심 있는 관찰은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는 열쇠를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