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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리 Feb 05. 2024

열린 몸과 마음으로 반응하기

'놀아주기' 말고, '놀기'

연극은 이미 대본이라는 텍스트에 의해 시간에 따라 진행될 사건이 정해져 있다. 연기를 시작하고 한 창 배울 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이미 정해져 있는 사건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는 부자연스러움이다. 연극은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다. 연기라는 것도 배우가 어떤 배역을 진짜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예술적 테크닉이다. (진실된 연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니니 연기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패스하자) 


 연극은 행동의 예술이다. 행동을 통해 사건과 이야기가 전개된다. 각 역할도 행동을 통해 그 의미를 전달한다. 문제는 이미 정해져 있는 행동들을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이미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는데, 그걸 모르라니! 정말 아이러니한 말이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그 의미를 깨닫고 있지만, 어릴 때는 무척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글이 산으로 가기 전에 결론부터 말하면, 내 경험 상 앞의 일을 모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내 앞의 상대 배우, 무대 공간, 조명, 사운드, 관객 등등등.  (한 번에 이걸 어떻게 다 집중하는지 궁금할 수 있겠지만, 배우라는 사람들은 그걸 한다) 


그렇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 나의 상황과 나의 마음, 정신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후에 오는 사건들에 바로바로 반응한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빙 둘러 왔다. ‘지금 이 순간’과 ‘반응’. 이것은 연기를 즐기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연기라는 메커니즘은 배우의 몸과 마음과 정신, 생각, 관객의 반응 등을 고려한 굉장히 섬세하고 복잡한 작업이다. 순간순간 대처해야 할 것이 많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열린 몸과 마음’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받아넘길 수 있는 기본 상태이다. 이 순간 살아있는 존재로서 반응한다. 어떤 액션이 나에게 와도 자연스럽게 받아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주 즐거운 상태이다. 긴장을 넘어선 엔도르핀과 도파민의 단계이다. 바로 연기가 '놀이'가 되는 단계이다. 

이때는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알지 않은 채 연기한다. 말이 이상하지만 그렇다. 그 순간 반응하다가 갑자기 '다음에 이 장면이지?'라고 생각이 들어오는 순간! 집중이 흐려지고, 연기에 틈이 생긴다. 쉬운 단계는 아니다.

열린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배우들의 피나는 연습과 수련을 통해 가능하다. 나는 이 몸과 마음이 ‘내려놓을 줄 아는 자세’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앞선 글에서 말했던 놀이의 조건이다. 


내려놓음. 

바라지 않음. 

욕망하지 않음.


이걸 육아에 적용해 보면, 우리는 순간순간 아이에게 집중한다. 아이를 잘 바라보고 관찰하면 아이의 행동이 보인다. 그리고 열린 몸과 마음으로 편견 없이 아이의 행동을 받아준다. 아이가 나를 보고 웃으면, ‘얘가 나를 보고 왜 웃지?’라고 생각할 건 아니지 않은가. 그냥 나도 웃으면 된다. 아이의 행동을 잘 관찰하고 분석했다면, 그 순간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 아빠는 그걸 해결하기 위해 다음 행동을 잘 수행하면 된다. 


특히 아이와 같이 놀 때, 이 열린 몸과 마음은 아주 유용하다. 아이와 잘 놀아주기 힘든 엄마, 아빠가 있다. 뭐 하고 놀아야 할지 잘 몰라 아이들이 재미없어하는 것 같다. 그럼 괜히 미안하고, 나도 재미없다.

아이들과 놀 때는 열린 몸과 마음으로 아이의 수준으로 나를 낮춰보는 것도 좋다. 아이처럼 반응하고, 아이처럼 웃고, 아이처럼 장난치면 나도 재밌고, 아이들도 재밌다. 이 순간 내가 아이가 되어 아이의 놀이에 참여하고, 거기에 순간순간 반응하는 것이다. 아이는 어른들의 얼굴표정, 행동, 목소리 등에 참 예민한 것 같다. 즉, 반응에 민감하다. 그것이 아이들의 생존 본능일 것이니까. 역으로 아이들은 어른들의 반응에 따라 기분이 금세 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이와 놀아주는 건 힘들다. 왜? 놀아주니까 힘들다. 내 에너지를 아이에게 주니까 힘들다. 그럼 말을 좀 바꿔보자.      


놀아주지 말고, 아이와 놀자. 

나도 놀고, 아이도 놀고.      


 열린 몸과 마음의 상태로 아이의 행동에 반응하고, 아이가 반응을 보이는 것에 따라 또다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와 아이 사이에 어떠한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그것이 어색하여 끊지 않길 바란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유대감에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런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 아이와 부모 사이에는 강한 유대가 생긴다. 더욱 중요한 건, 나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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