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한 내성
<외로움>
“오늘따라 조금 외로운 것 같아.”
“엥? 이게 무슨, 다람쥐 도토리 묻는 소리야?”
“맞잖아. 자기는 틈만 나면 책 읽고 글 쓰고. 나랑은 안 놀아주잖아.”
“헉? 지금도 소파에 함께 앉아 있잖아. 그걸로 부족해?”
아내가 괜한 투정을 부립니다.
자기 혼자서 TV 보다가 심술이 나면 가끔 이럽니다.
그럴 때는 읽던 책을 한쪽에 조용히 내려놓습니다.
함께 TV 보자는 말이므로 고집을 부리진 않습니다.
“이 책, 보던 거 조금만 더 볼게. 조금만 기다려.”
“흥! 이다. 뿡! 이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 볼게.”
결국, 제가 한발 물러섭니다.
책이야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서 다시 보면 될 일이지만,
아내가 삐치면 그거 뒷감당하는 게 쉽지는 않거든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제가 양보합니다.
사실 제가 더 외로움을 타는데 이런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체로 제 고집대로 귀를 막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거든요.
그러다가 가끔 한 번씩은 이렇게 져 준답니다.
다섯 번 이야기하면 한 번 들을까 말까, 하는 확률이죠.
고집 피웠다가 분위기가 싸늘해질 때 그렇습니다.
“자기는 어떨 때 외로워?”
“난 그대가 곁에 있어도 외로워.”
“농담하지 말고, 언제 외로움을 느끼냐고?”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내는 혼자라도 자연스럽습니다.
외로움을 느낀다고 가끔 투정할 때 빼고는 대체로 혼자서 잘 지냅니다.
대답과는 달리
저는 함께 있는데도 잠시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탑니다.
외로운 시절을 오래 견뎠는데도 불구하고
저에겐 외로움에 대한 내성이 생기지 않았나 봅니다.
낯선 타지에서 고생한 경험 이면에는
홀로 견뎌내야 했던 지독한 외로움이 있었죠.
부모님께서 계시지 않는 이십 대 중반의 남자,
삼 형제가 뿔뿔이 흩어져 살다 보니 만날 일이 잘 없었고,
살아가야 할 앞날이 막막하니 마음의 여유도 많이 없었습니다.
홀로 식사를 해결하고, 공부하고, 졸업하고, 취직했었죠.
여전히 홀로 잠들고 일터로 향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홀로 잠들고.
그러다 서른 끝자락에 아내를 만났습니다.
기나긴 외로움 끝에 만난 아내라서 더 소중합니다.
아내를 만나고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제 곁을 떠난 것이라 믿고 싶네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스스로 외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해서 나지막이 속삭여봅니다.
“당신이 그리워지기 전에, 당신을 외롭게 하지 않겠다고.”
- The 한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