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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창호 Feb 09. 2022

우리는 모두 달의 DNA를 가졌다.

1년 중 가장 긴 연휴 중 하나인 설이 막 지났다. 올해 설은 마침 2월 첫째 날 1일이었고 정월 대보름은 딱 보름 후인 2월 15일이다. 이런 해도 흔치 않은 듯싶다. 


어린 시절의 정월 대보름에 대한 기억은 단연 깡통에 작은 구멍을 내고 숯을 넣어 돌리는 위험한(?) 놀이였다. 동네골목에서 아는 형님들과 진짜 오징어 게임을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ㅋ.. 하지만, 그랬던 시간들은 워낙 짧았던 듯하고 커가면서는 주로 오곡밥과 부럼과 같은 특별한 먹거리가 밥상에 오르면 그 날이 대보름인줄 알았다. 

대전 성심당 '오! 보름달' 빵.. 여럿이 한자리에 모이는 정월 대보름에 딱 어울리는 컨템퍼러리 한 부럼빵이다. 빵 안의 통팥앙금과 완두 필링의 풍미가 커피와도 잘 어울린다.

암튼, 달라지는 달의 모습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을 따라서 한 해를 시작하고, 정월 대보름에는 달을 보며 한해의 소원과 운을 기원하기도 하는 우리는 모두 달의 DNA를 가졌다. 


그렇게들 성장해서인지 달에 대해서는 해와는 조금 다른 구석의 갬성들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외국의 출장지나 여행지에서 긴 일과를 마친 뒤 숙소 창밖으로 보름달이라도 보게 되면 마음 한구석은 뒤척뒤척 여지없이 센치해졌었던 듯하다.  


그런데,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 타국으로 이주해 아예 이방인의 처지가 되게 되면 그 맘이 한 단계 더 복잡 미묘해지는 가 보다.


“희철아, 이게 다 웬 와인 병들이야?”

“야  창호야 임마, 여기 보름달이라도 한번 떠봐라 고향생각 때문에 와인이라도 한잔 안 마실 수가 있나?” 


아주 오래전 아메리칸드림을 쫓아 시애틀로 훌쩍 떠난 절친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대답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체질 때문에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했던 그였는데, 보름달이라도 환하게 뜨는 날이면 이국생활에서의 낯섦과 사무치는 그리움들을 마냥 누르고 있기가 힘들었던 듯하다. 이방인에게는 지친 갬성을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달이 종종 필요했던 듯싶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이 언제 갔는지 모르게 광속으로 지나가니, 이전에는 그저 달달하게만 들렸던 달을 노래하는 ‘Moon River’의 가삿말들이 인생 이야기처럼 하나하나 의미로 뚜렷하게 다가온다. 


“.. 볼 세상이 너무 많아 ♬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우린 같은 무지개의 끝을 쫓고 있어 ♬ (We're after the same rainbow's end)..”


혹시, 서랍 깊숙한 곳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를 그 시절의 아이팟이라도 찾아내 전원을 다시 켜볼 수 있다면, 나의 ‘허클베리 프렌드’ 희철이가 어떤 한해의 대보름날에 고향 대전을 생각하며 불렀을 ‘Moon River’도 한자락 나올 듯싶다.  


"Moon River ~ ♬" 


우리는 모두 달의 DNA를 가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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