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뉴스
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학회 사업에 선정되어 유아교육계 원로교수님과 선배 한 분과 팀을 꾸리게 됐습니다. 지난 주, 교수님 댁에서 방향 논의를 위한 첫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여든 가까운 노교수와 오십대, 사십대 제자 둘이 서로 마주앉은 자리였습니다. 갓 내린 따뜻한 커피와 정갈한 간식을 앞에 두고 교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니?” 선배와 차례로 답하고 서로의 생각에 동의하거나 다른 생각을 덧붙이는 동안 교수님 하신 말씀은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럴 수도 있겠네.”였습니다.
제자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한참 듣고는 방법론에 대한 의견을 덧붙이시는데 제자 둘의 생각은 교수님과 다릅니다. “그래, 너희 말이 맞네. 내가 그 생각을 못했다. 그럼 그리 해 보는 것도 좋겠다.” 스승은 제자들의 이야기가 실천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고 논리를 끊임없이 재정비하고 계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교수님께 배운 가장 중요한 유아교육의 덕목은 “안된다”가 아니라 “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격려하고 지지하는 스승의 모습이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어린이집 실습을 나간 졸업반 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이제 실습나간 지 한 주인데 눈물 가득 머금은 목소리에 가슴 철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실습을 못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실습 시작 겨우 한 주, 못하겠단 말에 하고 싶은 충고의 말들이 가득 떠오르는 것을 꾹 참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노력해도 담임교사로부터 신임을 받을 수 없었고 그렇게 누적된 서운한 감정과 관계 갈등이 이유였습니다. 충고하지 않았으나 “왜?”라고 묻는 선생의 목소리에 이미 한 마디 하려고 벼르던 감정이 실렸는지 차마 직설적 감정은 드러내지 못하는 학생의 머뭇거림이 전달됐습니다. 그 머뭇거림에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 속상했겠다. 열심히 애 썼는데 몰라 주셨네. 누구라도 어려웠겠다.” 그제서야 담임교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래도 대단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일주일을 잘 해 냈구나. 쉬운 일 아닌데 그게 네 힘이다.” 월요일 어린이집 원장님과 통화해 보기로 했고, 한 주를 잘 보낸 뒤 학생과는 다시 이야기 나누기로 했습니다. 당장 포기할 듯 하다가도 해 보겠다는 말들의 이어짐이 삶일지도 모르겠단 얘기로 대화를 마무리 했습니다.
근대 이후 유아교육사는 여성들의 연대사였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식민의 역사, 해방, 여성들에 대한 외국 선교사들의 연대, 그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는 과정은 가부장적 환경에서 여성 스승과 선배들이 매번 더 낮은 곳에 선 여성들과 이어지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날선 언어들로 반목하는 과정들도 없지 않았겠으나 명맥을 잇고 성장하고 여전한 고민이 이어지는 현장의 중심에는 여성 선후배들의 격려와 지지로 이어진 연대와 환대의 기운이 있었겠습니다.
양평 스승의 댁은 지하철 역에서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곳입니다. 단 두 대 밖에 없다는 전설의 택시를 외지인이 차지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국수역은 역사 안에서 책을 읽으며 제자를 기다리는 노교수의 모습으로 기억되거나 역사 밖에서 차문을 열고 빼꼼히 기다리는 주름진 백발의 환대로 기억됩니다.
스승과 선배란 이름은 물처럼 낮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흐르는, 연대와 환대의 주름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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