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뉴스
김명하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민교협 회원)
지난 토요일, 길을 걸었습니다. 지하철로 40분이면 갈 길을 미세 먼지 뿌연 숨을 마시며 4시간 동안 걸어서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었습니다.
1982년 21살에 입사한 여성 용접공은 1986년 25살 해고자가 되었습니다. 어용노조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고, 이 기간 무단으로 결근한 것이 해고의 사유였습니다.
해고 이후 25년 뒤 2011년 1월, 해고당한 여성용접공은 푸른 작업복을 입고 35m 높이의 크레인에 올라 309일 간의 고공 농성 끝에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철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0년 뒤, 지난 2020년 12월 30일 부산에서 출발한 도보 시위, 희망 뚜벅이는 34일 만에 해를 바꿔 서울 청와대에 도착했습니다.
몇 십 명으로 출발한 부산의 희망 뚜벅이는 34일 후 700여명으로 불어 있었고, 송경동 시인을 비롯한 시민사회계의 동조단식도 48일간 이어졌습니다.
희망 뚜벅이 마지막 날, 청와대 앞에서 외친 그녀의 발언 속에는 LG트윈타워, 아시아나케이오, 코레일네트웍스, 아사히글라스 등에서 해고된 노동자, 차별과 멸시부터 배우는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가장 취약하고 불안정한 상태에 처해 있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얘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미 정년을 지난 그녀에게 복직투쟁은 ‘김진숙’ 그녀 자신의 복직 뿐 아니라, 그녀의 복직이란 상징적 사건을 통해 이 땅의 노동자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란 요구였습니다. 죽이는 노동이 아니라 살리는 노동, 무엇보다 사람을 앞세운 일상을 되돌리란 절박한 외침이었습니다. 10년 전 크레인 밑에 선 사람들, 오늘 함께 걷고 단식한 사람들도 김진숙이란 은유를 통해 “세상이 들어주지 않는 저마다의 절박한 사연들을 몸에 새긴” 이들을 죽이지 말고 살리자란 선언에 동참한 이들이었습니다.
34일간 400km의 행진과 48일간 동조단식이 끝난 다음 날, 그녀의 복직을 위한 교섭이 열렸으나 결국 결렬되었습니다. ‘김진숙 복직’이란 하나의 사건이 무산된 것이 아니라 부당해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과 멸시, 여성 노약자 등 취약 대상의 불안정 노동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또 다시 결렬된 셈입니다.
재발된 암 치료를 뒤로 하고 걸은 길이나 48일간의 단식은 자신의 숨을 건 외침이었습니다. 숨을 걸어야만 겨우 닿을 수 있는 이들의 천리길은 지나치게 멀고도 길고, 그 길 끝의 결정은 지나치게 짧고 명료합니다.
수년간 근무했으나 임금에 변화가 없는 비정규직 동료 교수는 올해도 연봉협상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제야 세상에 드러난 중간착취의 기만을 여전히 살아가는 파견직 청소노동자는 오늘도 내 일자리를 쓸고 닦습니다.
안정된 우리의 일자리는 누구의 희생 위에서 연명되는 것인지요. “김진숙”들로 은유되는 일상의 세계에서 “김진숙 복직”으로 시작되어야 할 일들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은유로서의 김진숙” 그녀의 복직을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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