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뉴스
김명하(민교협 회원 / 안산대 유아교육과 교수)
개강을 앞두고 학과 동료교수가 지도학생과 함께 연구실을 찾아왔습니다. 학비 마련 때문에 휴학해 알바를 하고, 그 돈으로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 현금 오십만 원과 헌혈로 모은 오천 원권 문화상품권 16장을 장학금으로 기탁하고자 학과장을 찾아 왔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받았던 두 번의 장학금을 학생은 잊지 않았고, 졸업을 앞두고 후배들에게도 그런 선물을 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귀했고 고마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소식들에 무신경했습니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건강이나 생명, 혹은 일자리나 안정된 삶을 잃거나 공개된 선언으로 사회적 약자가 되어 투사가 되는 과정, 그렇게 투사가 되어 앞서서 절규하는 이들에게 돌아오는 편견과 혐오, 모멸 가득한 말들.
그 변함없는 반복적 비애들이 지나치게 많았고 할 수 있는 건 몇 마디 애도나 비판의 말들밖에 없었습니다.
굶어야, 몇 리 길을 걸어야, 땅에서 한참을 떨어진 하늘에 올라가 몇 날을 살아야, 심지어 죽어야 겨우 들어주는 일들 말입니다.
말로 보태거나 일회성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바뀌지 않고 여전히 반복되는 그런 일들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죽었습니다. 젊은 청년이 스스로도 죽고 시대의 어른이 되어 주셨던 분들이 노환과 병환으로도 죽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런 죽음에도 무뎌집니다. 애써 그들의 이야기를 외면합니다. 그들의 죽음 뒤에 이어진 추모와 글들도 외면합니다. 추모도 글들로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함이었겠지요.
SNS에서 글로만 보던 젊은 여성이 스스로 죽었습니다. “그”에서 “그녀”로 자신을 선언하고 공개적 활동을 하던 이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고민이나 불안이 생경하게 느껴졌고 심지어 과하게도 느껴졌습니다. 그녀의 “글”에, 그러니까 “그녀”에게 동의한다는 연대를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그 행위에서도 거절과 배제를 느낀 것은 아닌지요.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 맥락 따위 사라진 채 없어지다시피 왜곡된 말도. 동지들이 있고, 애인이 있고, 가족이 있어도, 친구 동료가 있어도 계속 고립되어 있어요. 그래서 떠나요.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도 난 갈 곳이, 아니 막아주는 곳이 없어요...”
“막아주는 곳” 이 없었던 그녀. 휘몰아치는 광풍을 혼자 겪어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나”들이 한 번 더 그녀에게 공감했다면 그 동의가 그녀에게 가해지는 혐오와 모멸의 일부를 막아주는 방패가 되어줄 수 있었을까요.
학교에 다닐 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졸업하는 학생이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탁하고 그것이 후배들에게도 선물이 될 것이라고 한 젊은 마음이 죽비가 됩니다.
사람에게 그가 삶을 연기할 수 있는 장소를 주는 것, 그러니까 그의 장소를 빼앗지 않는 것, 그가 온전히 “그” 일 수 있도록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전하는 것. 그 환대의 마음을 무력해지지 말고 바로 옆에 선 이들과 지치지 않고 나눠야겠다고 다시 읊조립니다.
편협하고 왜소한 세계에서 밀려 떠난 녹색당원이자 전 음악교사였던 김기홍 선생님과 군인으로 남고자 했던 부사관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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