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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n 05. 2018

도서관에서 만난 '책 소독기'

나는 새책 냄새가 좋다. 누구의 손도 타지 않아 샤르륵 넘길 때 종이 먼지가 날리는 새책 특유의 냄새. 특히 재생지로 만든 책 냄새는 더 좋다.


그래서이기도 하고, 물욕(!)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책을 사서 봤다. 결국 끝없이 쌓이던 책에게 안방을 내주게 되면서 ‘아! 이건 아니구나’ 싶어 대부분의 책을 정리하고 도서관을 다니기로 했다. 그럼에도 사게 되는 책은 읽음과 동시에 중고로 팔아 버린다. 그래서 요즘은 도서관을 더 자주 갈 수밖에 없다.


혹자는 결벽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 책은 여러 사람 손을 거치기 때문에 받아와서 앞뒷면을 닦는다. 읽다가 내려놓을 때마다 손도 씻게 된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읽게 되는 책도 도서관 책은 아니다. 

책 소독기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을 나에게 이것은 꽤 반가운 물건이었다. 그동안 하나 비치했으면 하고 바랬는데 드디어 마련해준 것이 고마워 도서관 직원분께 “너무 좋네요.”하며 혼자 싱글벙글했다. 샤라락~ 책장을 넘기며 바람으로 소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0초. 얼마나 효과가 좋은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일단, 광고는 이렇다.


신종플루, 습진, 아토피, 기회성 감염, 이제 00와 함께 안전한 독서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공공 기관으로부터 시험을 통해 99.9% 살균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천연 아로마를 사용하여 도서의 살균효과를 증진시키고 은은한 향을 풍겨서 이용자의 독서 즐거움을 향상합니다.

HEPA필터나 전기집진 방식이 아닌 '고성능 정전기 필름필터'를 사용하여 미세먼지일수록 포집력이 우수하고, 별도의 전원을 사용하지 않아 전자파의 발생을 극소화하였습니다.

자외선램프로 순간 살균으로 책장을 넘기는 부분 집중 소독합니다.


광고만 보면 정말 안전할 것 같아 보인다. 30초 동안 매번 저걸 읽어본다. 그리고 안심을 한다. 저 정도면 뭐라도 걸러주는 기계일 것이 분명하다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집으로 와 책 소독기를 믿을까, 나를 믿을까 고민한다. 3초 고민하고 다시 닦는다. 결국 평소와 같이 앞뒷면을 닦지만 왠지 ‘책 소독기’를 돌리고 오면 나름의 안정감이 있다. 내가 닦아 없애지 못했을 무언가가 닦여 왔을 거라는 안도감이 든다. 신뢰하면서도 신뢰하지 못하는 책 소독기. 아이러니한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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