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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n 06. 2018

'서로 돕고 사는 사회'에 익숙한 친구들

이사를 했다. 포장이사라 크게 한일도 없는데 내 다리는 왜 그렇게 통증을 호소했는지 정녕 모르겠다. 남편이 휴가를 낼 수 없어 혼자 이사를 하겠다고 나섰는데 "혼자 하는 건 아니겠지" 묻는 언니 말에 "난 독립적인 여성!!"이라며 호기롭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마음으로 동분서주했나 보다. 그렇게 아팠던걸 보면.


사실 새로운 동네에 도착함과 동시에 독립적인 여성 코스프레는 끝났다. "친구야~~"하며 나보다 더 빨리 와준 친구가 있었다. 혼자 이사한다는 걸 알게 된 친구들이 서로 와주겠다 말해줘서 너무 감사했던 이번 이사. 그런 친구들 중 같은 동네 살고 있는 친구가 지리적으로, 시간적으로 부담이 덜 될 듯하여 와달라 부탁했다.


이사 전문가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피해 복도에 앉아 있자니 친구들끼리 서로의 이사를 돕던 시절 생각이 났다. 지금은 '포장이사'를 하고 있지만 그때는 '용달이사'를 했기 때문에 짐을 싸고 푸는 일을 직접 해야 했다. 가진 짐이 많지 않아 1톤 트럭도 충분했지만 이삿짐 나르랴, 공과금 정산하랴, 전세금 반환받으랴, 혼자 처리하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이번에 와준 친구는 '절친'으로 서로가 언니와 함께 살던 시절에도 찾아가 짐 정리를 돕던 사이다. 나는 언니와 같이 살면서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고 친구는 학교 기숙사를 나오면서 이사를 시작했다. 서로의 이사 날짜가 같지 않으니 1.5년에 한 번씩은 이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가 처음 독립했던 집 도배를 같이 했던 일, 긴 복도가 있던 우리 집 물청소를 해 주던 친구의 모습 등 20대 이사의 많은 날들을 이 친구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친구뿐 아니라 '싱글 이사 품앗이'를 주고받던 친구들도 꽤 있다. 돈에 맞춰, 분위기에 맞춰 동네를 찾기 힘들고 멀리 살면 이사 돕기도 어렵다며 한 사람이 정착한 동네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몇 년을 같은 동네 주민으로 살던 친구들. 돕지 못한 이사는 새집에서 어색할 서로를 위해 늦지 않게 찾아가 집들이 명목으로 같이 잠을 자고, 지출이 많았을 서로를 위해 화장지라도 사다 주던 친구들이다.   


'이사는 잘했느냐, 나 안 가도 다른 친구 왔느냐' 물어주는 친구, 이삿날 아침 '나 지금 출발하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되냐' 물어준 친구. 다리가 퉁퉁 부은 나를 위해 이사 다음날 한달음에 달려와 밥 챙겨주고 집안일을 돕겠다 나서 준 친구. 이렇게 적극적인 친구들이 있어 혼자 하는 이사가 부담은 됐지만 옛 생각도 나고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사하고 다음 날, 소설가 김영하 님의 산문집 <말하다>에서 이야기한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살아보니 친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라는 말이 재조명됐다는 과거 기사를 봤다. 이 기사를 보며 “동의할 수 없어” 하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 시간에 책이나 볼걸'이라니???!!!

감사하게도 내 친구들은 의식하며 살고 있지 않지만 '서로 돕고 사는 사회'를 살아가는데 익숙하고 꽤나 적극적인 사람들이다. 시골에서 주고받던 ‘품앗이’나 ‘우리가 남이가 정신'이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를 친구들. 그러니 친구가 중요하지 않다는 김영하 님의 말은 어떤 친구를 두었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을 만큼 부정한다.


이번 이사를 통해 다시 한번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좋은 사람이 주변에 있음에 안도했다. 다리의 통증 남겼지만 그보다 따뜻한 마음을 얻었으니 힘겨웠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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