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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n 03. 2018

'좋은 사람' 말고 '일 잘 하는 사람'

작년 S전자 프로젝트를 끝으로 지금까지 프로젝트성을 뛴 일은 하지 않고 있다. 7개월간의 프로젝트 기간 동안 인생 스트레스의 절반은 받은 기분이다. 밤을 새우고, 새벽녘 택시를 타고 수원으로 달려가는 일, 책상 위의 쪽잠, 새벽에 들어와 눈 붙이려 누웠다 전화받고 뛰쳐나가는 일이 일상이었던 삶. 아주 오래전 겪어 본 생활이었지만 너무너무 오랜만이라 신세계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 두개의 달 -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내가 살던 그 세상에 맞는지 의심했을 정도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 나오는 또 다른 세상의 또 다른 푸른 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매일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금이 2Q17의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혼란스러운 생각은 프로젝트 중반부터 끝나던 날까지 계속됐다. 그렇게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평온하면서도 정상적인 삶, 아침 7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잠드는 2018년으로 돌아왔다. 숨고르기를 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해 지금까지도 현실세계에서 평온한 삶을 선택 중이다. 


책임져야 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일을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감, 일정을 맞춰야 한다는 중압감, 제대로 일하는 팀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 있다. 이럴 때 나의 스트레스 강도는 꽤 높다. 그런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력'이다.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을 때 인력 교체를 하지 않은 적이 없다. 회사에서 세팅해주는 팀은 매번 누수가 있기 마련이다. 일 잘하는 사람이 없어서, 일 잘하는 사람에게 맞춰 줄 이 없어서, 투입될 인원의 숫자만 맞춰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네가 무서워서 '일 잘하고 돈 많이 주는 사람'도 넣었다.” 말하는 대표가 있을 때, 나를 향한 무례한 말이 함께 온 듯 하지만,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어쨌든, 인력은 프로젝트 베이스의 팀을 이끌어가야 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내가 판단할 때 불필요한, 유효하지 않은 인력은 가차 없이 교체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내가 아는 지인들과 함께 투입되도록 세팅한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고, 그런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일의 완성도가 올라가는 것이라 생각하는 내가 편협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길 바란다. 여기서 원만하다는 것은 순수한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의 유연한 관계를 말한다. 실력 없이 몸만 무거운 사람(), 말로 일하는 사람, 이간질하는 사람을 교체 0순위로 뽑는다. 물론 모든 사람을 교체할 수는 없다. 말로 일하는 사람, 이간질하는 사람 정도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함께 일하는 동안만은 그 강도가 낮아지도록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럼에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교체한다. 누군가는 '매정한 사람'이라 표현할 수 있겠지만  '일정에 맞춰 일을 마무리하는 팀'이 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적어도 나의 선택은 그렇다.


보통의 나는 사람 좋다는 표현을 받는 사람을 좋아한다. 개인적이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은 배려심이 깊은 사람을 좋아한다. 감성적이고 즐겁고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 일에 쫓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업무로 만난 사람은 차라리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더라도 일 잘하는 사람이 좋다. 소위 "싹수없어도 일 잘한다면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주의다. 일의 특성상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 짧은 시간 성과를 내고 떠나는 일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인간관계까지' 맺고 일을 마무리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나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사람을 사귀는 일은 원하지도, 잘 이뤄지지도 않는다. 그저 '업무 관계'로 남는 것을 원하고 그렇게 남은 몇몇의 사람들은 다음 프로젝트에서 만나 함께 일하며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사귀는 관계'가 된다.


Q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던 S전자에서, 핵심 인력을 교체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함께 할 수 있는 인력이 아니라 판단했고 교체를 요청했지만 대표를 끝끝내 설득시킬 수 없었다. 대표는 '좋은 사람'이라며 인연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말했다. 앞서 이야기한 가차없이 인력 교체의 카드를 내미는 나의 모습은 참으로 냉정해 보인다. 하지만 깊은 내면의 나는 냉정하지 못한 구석이 있어 맡았던 일을 중도에 떠날 수 없었다. 그것을 '책임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순수하고 맑은 눈빛으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대표를 두고 몇 번의 갈등은 있었지만 결국 남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을 선택했다.


구멍 난 일은 평일 저녁과, 주말을 이용해 아는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일정 내에 프로젝트 마무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인력 교체의 다음 카드다. 대표가 '좋은 사람'이라 말했던 인력은 결국 중도에 잠수를 탔고 구멍을 막기 위해 나는 우리팀 모두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마 할아범처럼 6개의 팔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지경이었다. 그렇게 지인까지 끌어들여 일을 마무리해보겠다 고군분투했던 프로젝트.

- 가마 할아범 -

결과적으로 일은 마무리됐지만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 다시 바람을 채우기 위한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음에는 '좋은 사람' 말고 '일 잘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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