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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n 20. 2018

그 사람들과 나는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두었다 갈 곳 잃은 캠핑 용품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정리했다. 몇몇 물건들은 친구네가 한달음에 달려와 싣고 갔다. 남은 물건은 동네 마켓에 저렴한 가격에 올린 덕분인지 순식간에 새로운 주인들이 나타났다.


서연맘님. 물건을 올리자 여러 개 물건에 '예약이요'하며 문자를 보내오더니 마켓에 올리지 않은 번외 물건도 구매하겠다며 5분 후 입금. 다음날 멀리 구리에서 차를 끌고 와 물건 수령. 깔끔하다. 나이스 한 서연맘님!  


튼튼이님. 다짜고짜 "어느 아파트에 살아요?"라며 사는 곳을 이미 아파트로 정의하던 튼튼이님은 협의한 거래시간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출발(난 집에 없는데...), 물건값도 깎아달란다. 놓친 물건을 구매하고 싶다며 불발(취소)되지 않았느냐 다섯번의 메시지가 왔다. 정작 약속시간에는 나타나지 않아 전화했더니 깜빡 잊었다며 전화 통화 중 양해도 없이 남편에게 설명을 하고 물건 가지러 가라 큰소리로 말했다. 10분 후 튼튼이님 남편은 오백 원짜리 동전들을 쏟아내고 갔다. 오백 원... 하나, 둘, 셋, 넷...(ㅠ.ㅠ)


최토끼님. 곧 가지러 오겠다는 메시지에서도 흥분됨을 느꼈다. 30분 후 밝고 명랑한 커플이 왔다. 한강 놀러 갈 때 정말 필요한 물건이었다며 싸게 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홍삼 음료를 한 병 내밀었다. 왠지 기분이 좋다. 이쁜 커플, 이쁜 사랑 하길...


미소님. 먼곳에서 오던 미소님은 너무 멀다며 몇번의 하소연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최토끼님이 준 홍삼음료를 건넨 나에게 너무 멀었고, 이전 거래자가 연락이 안 되어 한참 기다리다 이렇게 늦었다며 하소연했다. 음료를 다 마신 것을 확인하고서야 돌아섰다. 휴우~ 더 오래 안 잡혀서 다행이다.


Sky님. 여러 개 물건을 같이 사고 싶은데 택배를 보내 달란다. 보내온 메시지에 매너가 보여 수고스럽지만 기꺼이 그러겠다 회신했다. 새 상품이라 친구에게 보낸다는 말에 왠지 내가 친구에게 선물하는 기분이 들어 포장에도 신경 써서 보냈다. 친구가 택배를 받고 좋아하길...


동이님. 종일 약속을 변경했다. 오늘 저녁이요, 내일 아침이요, 내일 오후요. 그리고는 약속시간에 근처에 왔다는 전화를 받고 1층으로 나갔더니 오지 않는다. 전화했더니 수신 거부됐다. 혹시나 다시 전화를 건다. 여전히 수신거부다. 나 수신 거부당한 여자야~!  


동이님이 사기로 했던 물건은 튼튼이님 남편이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와 이번에는 제대로 된 지폐를 주고 데려갔다. 튼튼이님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짧은 시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흥미롭게 본 주앙 호샤(João Rocha)의 이야기와 그림들이 떠올랐다. 그는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정의했다. "당신은 독실한 기독교인일 수도, 혹은 열렬한 무신론자일 수도 있죠. 그러나 빵을 자르는 방법 같은 건 똑같을 수 있어요."

- 출처, 텀플러 페이지 -
관련 글을 읽고 그림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이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일부는 동질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유는 다르지만 같은 부분이 있고, 같지만 다른 부분이 있다. 그래서 교집합과 교집합을 정리하다 보면 결국 많은 사람들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으로 동질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상대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없고, 평범하지 않다 정의하는 말속의 '평범'함은 누구를 기준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인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결국, 누군가는 나와 겹치는 부분을 가진 사람이니 이상하다는 말도, 평범하지 않다는 말도 상대가 아닌 나를 향해 하는 말일 수 있다.


중고 물건을 팔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그들을 만나며 느끼는 내 감정도 다양했다. 어찌 보면 진상이라고 표현할 사람도 있었다. 이럴 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지만 주앙 호샤(João Rocha)의 이야기처럼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다양하게 느끼던 감정을 심플하게 정리할 수 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완벽하다거나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면 크게 미워할 사람도, 싫어할 사람도, 진상도, 이상한 사람도 세상에는 별로 없어진다. "저 사람, 진상 같지만 나랑 같은 책 읽고 있는 거 아니야?"하며 웃으며 돌아설 수 있어진다.


그런 이유로 나는 서연맘님부터 동이님까지 모두 중고 물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같았으니 동지애를 느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어쩌면 일면식 있는 사람들처럼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이 많지만 미워하거나 싫어하거나 배척하지 않아야 한다. 어쩌면 그 사람들과 나는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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