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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Jun 23. 2018

감정은 내버려 두기만 해도 사라지는 무상한 것

불교의 ‘알아차림’인 ‘사띠(Sati)’는 스스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말한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정확하게 아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다.        

                  

상처받아 불쾌해진 기분이 느껴질 때 ‘사띠(Sati)’와 같이 자신의 감정을 차분히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조급하게 어떤 행동을 취하거나 결론을 내리면 실수하는 경우가 있다. 감정을 정확히 알아차리는 시간을 가지면 격하게 반응하던 감정이 차분해진다. 자신이 느낀 감정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판단한다. 쓸데없는 감정, 부정적인 감정은 버리면 된다. 이런 ‘사띠(Sati)’의 자세를 가지면 자신의 감정을 알고 관리할 수 있다.       


우리는 슬픔, 고통, 아픔, 분노, 상처를 느낄 때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친다. 몸부림치는 상황이 오면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바라보지 않는다. 어린 시절 친구와 다투고 온 날, 엄마에게 이야기를 전하며 화해하고 싶다며 친구와 틀어질까 애달파한다. 엄마는 “내버려둬. 친구는 다투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시간 지나면 다 좋아져.”하고 대수롭지 않게 답해 줄 때가 있다. ‘그게 뭐야.’하며 돌아서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다퉜냐는 듯 친구와 다시 잘 지낸다. 엄마가 왠지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을 갖춘 사람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라는 엄마의 조언이었음을 어린 시절에는 몰랐다.   

    

상처받은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는 얼룩과 같다. 죽을 때까지 같은 농도의 상처는 없다. 호수에 돌을 던져 물결을 일으키는 놀이가 있다. 누가 더 물결을 많이 내는지 내기하는 놀이다. 놀이에서 물결을 잔잔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다려야 한다. 먼저 던진 사람의 물결이 잦아들 즈음 다음 물결을 일으키기 위해 돌을 던질 수 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물결이 잦아들 시간을 줘야 한다. 그래야 다음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 있다. 업무시간에 직장 상사의 신경질적인 질책에 화나고 상처받는다. 하지만 퇴근 후 만난 남자 친구가 꽃다발을 들고 활짝 웃으며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하다. 꽃다발을 든 남자 친구를 만난 순간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꽃다발이 지난 시간 상사의 질책을 지웠다. 기분전환이 된 저녁을 보내고 다음 날 상사를 만나면 전날에 비해 상처받은 마음은 가벼워져 있다. 어제 받은 질책은 아팠지만 오늘은 다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상처의 무게가 어제에 비해 훨씬 가벼워져 있기 때문이다. 어제의 질책이 오늘은 조언처럼 느낄 수도 있다.       


법경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āya)에는 ‘감정은 내버려 두기만 해도 사라지는 무상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상처받은 일는 과거의 일이다. 지나간 과거를 다시 꺼내 자신의 감정을 흔들 필요는 없다. 현재에 일어난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된다. 과거가 된다는 것은 이미 호수의 물결이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갔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상처는 기다리면 멀어져 간다. 무상한 것이 된다. 멀어져 갈, 무상해질 상처를 붙잡고 아파하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오늘은 단 한 번밖에 오지 않은 귀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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