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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Aug 05. 2018

퍼스널 스페이스를 지켜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인간의 4가지 유형을 이야기하며 나온 개념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 간에는 밀접한 사람, 가깝지 않은 사람 등의 구분을 두어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며 거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인간관계 속에서 거리에 대한 감을 잃어가는 나를 발견하고 경고를 보내야 했다. 나는 모든 사람과 퍼스널 스페이스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왜 다른지에 대해 한탄하지 않고 '다른 사람일 뿐'이라는 의식이 싹트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의식이 시작되면서, 관계에 대한 이런 기준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가까운 사람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실천해왔다. 나 역시 애드워드 홀의 이야기처럼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마음의 적당한 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 거리는 친구냐, 지인이냐, 아는 사람이냐 등의 용어로 정의해 왔고 그런 나의 기준에 상대는 자신을 줄 세운다며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나 절친이 있고, 동창이 있고, 직장동료가 있는 것처럼 마음의 거리는 그런 구분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어본다. 그 질문에 상대도 아니라고 답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고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끼는 친구는 내게 친한 친구가 너무 많아 자기를 보아 줄 시간이 없는 것 아니냐며 투정을 부린다. 하지만 정작 만나자는 말도, 연락도 늘 내쪽에서 한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몇 번의 시간 조율을 거쳐야 하며 그녀의 시간에 가급적이면 맞춰주어야 한다. 어쩌면 나보다 그녀가 더 나에 대한 퍼스널 스페이스 거리가 먼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본인의 성향상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런 투정을 부릴 때면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마음으로 그 친구가 내게 소중한 사람임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자주 만난다고 모두 친구는 아니다. 직장동료와 매일 만나지만 그들을 '친구'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가까운 친구라도 너무 자주 만나면 경계가 무너지며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경계하며 적당한 거리를 잘 유지해야 무너지지 않는 것이 관계인데, 가까운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 최근 가까운 사람과 거리가 무너지고 있음을 인식한 순간, 위험을 느꼈다. '가까우니까', '서로를 잘 아니까', '절친이니까'라는 이유를 내 밀어 보아도 무너지지 않아야 할 거리가 있다. 그것이 무너지면 '관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역시 마음이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경고음이 울리는 것을 느꼈으니 의식적으로 관리해주어야 한다. 의외로 남편과의 퍼스널 스페이스는 잘 유지되고 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습관으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습관으로 자리 잡아 경고음을 받지 않도록 나 자신을 더 다듬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누구와도 퍼스널 스페이스가 쉬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것으로 '관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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