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 베란다 문을 여니 뜨겁게 들어오던 공기가 다른 날과 달리 시원하다. 벌써 여름이 간 건가?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여름이 가는 아쉬움이 아니라 빨리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었을 테지. 저녁 운동에서도 뜨겁던 바람이 여느 날과 다르다고 말하자 남편이 입추라고 알려줬다.
입추(立秋)
벌써 가을의 시작이구나. 어쩌면 하루 만에 이렇게 공기가 달라졌을까? 기후 변화를 중심으로 만든 24절기가 맞아떨어질 때 왠지 모르게 소름 끼치는 기분이 든다. 자연의 현상은 변화했고 지구의 온도도 달라지고 있음에도 24절기는 여전히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태양의 움직임에 대한 정의다. 물론 입추였던 어제 전국은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긴 했지만 새벽과 밤공기가 달라진 것만은 확실하다.
24절기는 중국 주(周) 나라 때 만들어졌다고 알려졌다. 농경사회에서 기후를 예측하는 일이 필요했기 때문에 만들어졌으며 정확한 국내 도입 시기는 확인할 수 없지만 삼국시대 이전 역사가 기록된 문헌에도 24절기에 대한 내용이 있다고 한국학 중앙연구원은 밝혔다.
입추라는 단어에는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간다. 더위가 한풀 꺾이는 것에 대한 반가움이랄까? 곧 수확을 앞둔 가을을 맞이하기 때문일까?
나는 아이스 음료를 잘 마시지 않는 편인데 올해는 한 번씩 찾게 될 만큼 더운 날씨가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더욱더 입추가 반가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구가 뜨거워져 4계절이 뚜렷했던 우리나라의 봄, 가을이 짧아진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하지만 짧은 가을이 기다려지는 것은 뜨거웠던 여름을 어서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아름답게 물들 산과 들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어릴 때는 까맣게 타는지도 모르고 여름을 즐겼다. 시냇가에 가서 물장구를 치고 친구들과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다 보면 여름이 훌쩍 지나갔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의 여름 사진은 언제나 새까맣게 탄 모습이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다 가을 햇살이 내려오면 시냇가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쉬워 출근 도장 찍듯 달려가 물장구를 치며 놀던 기억이 난다. "조금 있으면 추워서 수영도 못해!"하며 가는 여름을 잡아보겠다고 아침만 먹으면 친구들 불러 물가로 뛰어가던 여름.
지금은 뜨겁기만 한 여름을 보내는 것이 힘겹고, 출근 도장 찍듯 에어컨 바람을 찾아 나서는 어른이 되었다. 어린 시절의 입추는 여름에 대한 아쉬움인데 어른이 되어 맞이 하는 입추는 여름을 보내는 즐거움이 되었다.
오늘 새벽도 공기가 다르다. 한낮은 덥겠지만 이제 나는 가을을 기다려본다. 뜨겁기만 했던 태양이 수그러들 가을. 시원한 바람을 내어줄 가을. 그리고 시골에서 수확을 하고 있을 두 엄마의 모습이 그려질 가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