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할 때는 몰랐는데 끝나갈 즈음 오른쪽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여행 중 돌길이 많았고 그 길을 오래 걷기에 내 발목과 일반 운동화는 적합하지 않았나 보다. 현지 가이드는 트래킹화를 신고 나서야 편해졌다고 하니 돌길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느라 아픈 다리를 살피지 못한 나의 미련함도 한몫했겠지.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병원을 갔다. 인대가 늘어났으니 당분간 운동도, 걷는 것도 하지 말라는 처방을 받았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나이 드는 것이 싫지 않다. 누군가는 늙어가는 것이 뭐가 좋냐 하겠지만 신이 나타나 “젊은 시절로 돌려줄게”라고 말한다면 나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노!" 다.
물론,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다면 이 정도의 여행에서 인대가 고장 나지는 않았을 테지.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다면 이 정도의 여행을 보내고 피로감도 덜 느꼈겠지.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다면 고장 난 인대가 더 빠르게 나을 테지.
그렇지만 나는 더 젊어지는 것을 거부한다. (물론 그럴 일은 절대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불편한 일임은 확실하다.
어른들이 '아이고아이고' 하며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내뱉는 탄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그 탄성을 내 지르고 있을 때 피식 웃고 만다. 누구에게나 오는 탄성의 시간으로 나 역시 피해갈 수 없음을 알았다.
여행을 다녀와 인대가 늘어나듯 오래 사용한 물건처럼 고장 나는 몸을 느끼며 나이 듦을 실감한다. 병원이라곤 진저리 치던 남편도 이제는 병원 단골 고객이 되고 말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진 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한 것을 고쳐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보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이 보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자신만이 느끼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
프리랜서인 나는 프로필 업데이트를 자주 하는 편인데 경력 00년의 숫자를 채워나갈 때 벌써 이렇게 경력이 많은가? 그럼 내 나이가 몇이야? 하며 놀랄 때가 있다. 그렇게 나이 듦을 몸뿐 아니라 숫자로도 생생히 느끼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나이 드는 것이 싫지 않은 이유는?
아주 젊은 시절의 나는 철없었고, 조금 더 젊은 시절의 나는 정신없이 바쁘기만 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나는?
여전히 철도 없고 바쁘지만 그것을 적절히 조절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조금이나마 얻고 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렇다고 스스로 안도할 수 있는 마음을 배워가고 있다고나 할까?
선선한 가을이다. 곧 한 해가 저물어 간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는 또 새로운 나이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제 육체적으로는 더 불편한 삶만이 나를 기다릴 테지.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물론, 풍요로운 삶을 가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나가야겠지. 그것은 좀 더 나이 든 어른들로부터 일 수도 있고, 나보다 젊은 사람들로부터 일 수도 있다. 책이 될 수도, 모임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무엇이 되어도 가능한 일일 테지.
예전에는 이런 마음보다는 숫자에 집착했다. 아 또 나이가 드는구나, 아 또 늙어가는구나 하는 한탄.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이 들어 성숙한 인간이 되길 바라는 나는, 내가 얼마나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기다려지고 기대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 그 길은 가봐야 알 일. 그래서 나이 드는 것이 싫지만은 않다.
가을바람이 불어 오니 어떤 식이든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