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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대로 쩡 Nov 21. 2018

그리운 택배박스

  어제 시어머님의 김장김치가 택배로 배달됐다. 요즘 시댁에서 택배 오는 일이 드믄데 오랜만에 받으니 반갑기도 하고 옛 추억과 함께 그리움이 밀려왔다.  


 "택배 왔습니다!"

 그날도 사과 박스 두 개가 배달됐다. 든든함과 함께 '이걸 언제 다 먹지'하는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배부른 소리 한다!” 언니들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유일하게 시댁에서 택배를 받던 나는 언니들에게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택배 박스를 뜯어 차곡차곡 쌓인 물건들을 꺼냈다. 깨끗하게 손질된 대파 한 다발, 똥까지 모두 발라낸 국물용 멸치, 반찬용 멸치, 말린 버섯, 감자, 양파, 손질된 마늘, 고추 한 봉지, 배추 두 포기... 끝없이 흘러나오는 농산물 보물상자 같았다. 한 달에 한번, 바쁜 농사철엔 두어 달에 한 번씩 시댁에서 택배가 배달됐다.


 시댁에 내려갈 때면 이른 아침, 마당에 앉아 대파를 손질하는 아버님이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아버님은 고된 농사일을 하는 중간 오침을 즐기셨는데 우리가 내려가면 그 시간에 국물용 멸치를 다듬곤 하셨다. 한때 주말마다 쑥 캐러 다닌다는 나를 위해 새벽같이 일하러 가신 줄 알았던 아버님이 한아름 쑥을 안고 돌아온 적도 있다.


 나는 일하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짧다. 성실하게 농사를 지으며 든든하게 가족을 지켜주는 아빠를 가진 남편을 만나 행복했다. 나를 처음 만난 날 아버님은 눈물을 흘리며 “반갑다.” 웃어주셨고 “잘 살아야 된다.”며 다독여 주셨다. 아버님은 참 몽글몽글한 눈동자를 가지셨다. 눈물을 흘리실 때는 소의 눈처럼 맑고 투명했다.


 아버님이 어려웠던 신혼초가 지나고 애교도 부릴 수 있을 즈음, 내내 아버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싶었던 마음을 내비쳤다. 아버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가 “가자!”하며 좋아하셨다.


 밭에서 일하고 들어오셨던 아버님의 등에서는 무엇보다 값진 땀냄새가 났다. 허리를 꼭 안고 가을 벼가 익어가는 시골길을 달렸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값진 냄새가 있을까? 내게도 든든한 아빠가 생겼다는 생각에 아버님 등 뒤에 얼굴을 묻고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하고 바랐다.


 그 후 아버님을 뵈면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아버님이 좋아하던 장기를 함께 두고 싶어 남편에게 장기를 배웠다. 다음 명절에는 전 굽기를 두고 장기 내기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던 어느 가을날.


 퇴근 후 수업을 듣고 있었다. 회식이라던 남편이 전화를 했다. '술에 취했나?' 하며 전화를 받으니 콧소리가 났다. 아!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다. 남편은 작고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네???”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들고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도 노령의 외할머니가 떠나신 줄 알았다. 남편을 태우고 그 길로 네 시간을 달려 시댁이 있는 도시의 병원 영안실에 도착했다.


 장기 내기를 해야 하는데... 같이 여행도 가기로 했는데... 같이 멸치 똥도 다듬어야 하는데... 그렇게 6년 전 아버님은 우리 곁을 떠났다.


 올 가을 아버님 제사가 있던 날, 평생 두 분 소원이었던 집 짓기를 혼자 해내신 어머님이 아버님 산소에서 말씀하셨다.


“집도 잘 지었고 나는 잘 살고 있어요.”


 마치 혼자 지낸 지난 고통의 시간을 꾹꾹 눌러 담아 내려놓듯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자 다시 한번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올라왔다.


 나는 대파를 다듬을 때면, 멸치 똥을 다듬을 때면 가슴이 아려온다. 사랑이란 헤어지고 나서도 이렇게 깊어질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시아버지가 뭐 그리 그립냐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게 아버님은 내 평생 가져 보지 못한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큰 키와 넓은 가슴을 가진 아버님과 헤어질 때 나눈 포옹이 그립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조금씩 조금씩 더 아프다. 매년 아버님 제사가 돌아오면 서글프고 눈물이 난다. 매년 눈물의 양은 많아지고 더 그리워진다.


 김장김치만 든 작은 박스를 받으며 이것저것 박스 속 많은 물건들을 꺼내던 예전 택배 박스가 새삼 그리워졌다. 그 택배박스는 아버님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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