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
이북만 읽다가 오랜만에 종이책이다. 도서관의 낡은 책을 빌려오며 참 많은 사람이 빌려 읽었나 보다 싶었다.
책은 아우슈비츠의 삶을 있는 사실 그대로 묘사하듯 내뱉고 있었다. 인간을 동물로 만들고자 했던 그들의 만행을 비난도, 비판도 없이 써 내려갔지만 그 속에는 강한 힘이 있었다. 나치즘을 증오하며 인간 이하로 살아가는 그들의 아픔을 읽게 될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스스로 찾아가게 만드는 책이었다. 덧붙여 번역가의 실력도 한몫했겠지만 작가 레비의 문체에도 매료되었다.
책 부록에 실린 인터뷰에서 왜 탈출을 시도할 생각이나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을 읽고 수용소 수인들의 심리를 뜨겁게 느꼈다.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았던 것이다. 탈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고 그들은 스스로에게 침묵을 강요한 것이다.
우리는 명백하고 손쉬운 추론을 믿지 않는다. 모든 문명적 상부구조가 제거되면 인간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우둔하다는 추론 말이다. 이러한 추론에 따르면, '헤프틀링'은 거리낌이 없는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생각에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궁핍과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 앞에서 수많은 사회적 습관과 본능이 침묵에 빠진다는 것이다. - 132p
살아야 한다면, 살아남아야 한다면 자신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뺏고 빼앗기는 전쟁 같은 상황에서도 그들은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쉬운 일도, 간단한 일도 절대 아니지만 독일인, 당신들은 그 일에 성공했다. 당신들의 눈앞에 온순한 우리가 있다. 우리 때문에 두려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반란 행위도, 도전적인 말도, 심판의 눈길조차 없을 테니까. -228p
이 글을 읽으며 정말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도대체 독일인은 왜 유대인을 학살하고 동물로 취급했던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유대인이어서가 아니라 그 누구였다 하더라도 수용소의 삶은 그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일제시대를 겪으며 우리 민족이 당했던 수모와 멸시가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영화 <군함도>의 장면 장면들이 휘몰아쳐 지나갔다.
드디어 독일이 패배하고 수용소에서 버틴 열흘의 시간. 그 열흘이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의 본능마저 눌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고,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죽어가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스스로 인간이기를 선택했다.
인간을 죽이는 건 바로 인간이다. 부당한 행동을 하는 것도, 부당함을 당하는 것도 인간이다. 거리낌 없이 시체와 한 침대를 쓰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옆 사람이 가진 배급 빵 4분의 1쪽을 뺏기 위해 그 사람이 죽기를 기다렸던 사람은, 물론 그의 잘못은 아닐지라도, 미개한 피그미, 가장 잔인한 사디스트보다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전형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다. -263p
레비가 수용소에서 산 시간은 1년 남짓이다. 그가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에 대한 관심이라고 했다. 살아 돌아와 그 속에서 일어난 일을 주저 없이 글로 적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인간이기를 선택했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모든 이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었다. 그럼에도 레비의 인생은 자살로 마감되었다. 그가 선택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어떤 것이었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이것이 인간인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도 인간이기를 선택하는 것도 자신에게 달렸다. 히틀러처럼 한 민족(종족)을 처절히 짓밟는 것이 아니더라도 가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인간이기를 선택했나? 내가 선택한 인간의 삶이 의문을 가지지 않는 삶인가? 새삼 자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