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굳은살은 4살 여자 아이 뺨을 어루만진다. 아이는 검은 상복을 입고 해맑게 웃고 있다. 30대 보이는 영정 남자 사진이 있다. 사람들은 24살 여자와 4살 여자아이 2살 남자아이들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장례가 지나가고 여자는 하루종일 동네를 걸어서 한쪽 슬리버가 찢어졌다. 주머니 속에 쟁그랑 소리만 난다. "아이들은 무슨 일 있어도 꼭 키워라. 재혼하지 말고 ~" 친정엄마 말 했다. 남편은 잃은 슬픔보다 생존이 먼저였다. 떨어지지 않는 두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배를 타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서울로 향했다. 일자리를 구하던 중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는데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는 소식이었다. 또 한 번에 하늘이 무너졌다. 왜 세상은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아이들 맡길 곳은 선택에 여지가 없이 시댁이었다. 시댁에서 남편이 떠나가고 돈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아이들을 맡길 곳 그곳뿐이었다. 남편 두동생이 있는데 폭력을 행사하고 시아버님은 술을 마시면 밥상을 걷어찼다.그곳에 자식을 맡겨야 한다니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딸아이는 내 얼굴 바라보면서 웃는다. 그런 아이에게 당분간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말 할 수가 없다.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택시에 몸을 싣고 갔다. 택시를 뒷따라오는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면서 뛰어온다.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우리 아이들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떠나야 한다.
떠난 후부터 두 아이들은 눈물이 마르는 날이 없었다. 4살 딸아이는 흐르는 눈물 닦고 나서 친척 삼촌댁으로 걸어갔다. 넓은 마당을 걸어가야 하는데 들어가지 못하고 담장에서 서있다. '우리 엄마 좀 찾아주세요. 언제쯤 오나요? '말하려고 왔는데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마당 한가운데 외숙모가 빨래를 넓고 있는 외숙모 까만 눈동자 속에서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날부터 아이는 눈동자를 보는 게 두려워져서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마음속에서 간절하게 눈을 보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진정 아프게 한 것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다. 어린 나이에 상처가 되어 고개를 들어서 까만 눈동자를 보는 게 힘들었다. 다행히도 옆에 이모가 있었다. 몇 달 후 엄마는 나를 데리러 왔고 남동생은 친정할머니댁에 남게 되었다. 혼자 있는 조카가 걱정이 되어서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왔다. 그런 조카를 딸처럼 보살피고 사랑으로 치유가 되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상처를 주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치유하는 것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