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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감정 정리하기

by 감사렌즈

두번째 자리 앉아서 귀를 활짝 열고 두 눈을 부릅뜬다. 활짝 열고 듣고 메모를 해도 뒤돌면 머릿속에서 내용이 사라진다. 며칠 전에 배웠던 내용을 강사님이 물어보는데 머릿속이 하얗다. 입술이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면서 어깨가 움츠려진다. 나이 탓인지? 머리 탓인지? 이해력이 낮은 탓인지 메모를 해도 기억이 되지 않는다. 속상하지만 다시 해보기로 하고 볼펜을 강하게 잡고 다시 메모를 한다.


교육창 너머 시선이 넘어간다. 창 넘어서 24시간 동안 쏟아지는 물품과 정보를 공부하는 기존 상담원들이 앉아있다. 일하면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면서 두 눈과 손은 마우스를 빠르게 움직인다. 교육 5일 차.. 매일 교육장을 걸어오면 이 할 수 있을지 고민에 빠진다. 그러던 중 강사님에 나에게 다가와서 질문을 한다.


"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 넓은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제 모습이 떠올라요."


"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하다 보면 다 하실 수 있어요."



6시간에 교육이 끝났다. 긴 시간 집중하면서 공부한 나에게 머리를 쓰담 쓰담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 안 쓰던 머리를 기름칠하면서 애쓰는 내 모습이 기특했다. 왜 하필 넓은 바닥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떠오른 걸까?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지 마. 다른 동기들이 사람들이 네가 얼마나 시험을 잘하는지 볼 거야...'일어나지 않은 망상에 빠졌다.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어. 시험은 잘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 있어. 그 점수가 내가 아니잖아. 점수는 단지 점수일 뿐이야. 만약 점수가 낮게 나오면. 좀 더 공부하면 되지. '그런데 왜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은 떨어지지 않는 걸까? 숨 들이마시고 한참 동안 걸어가면서 생각해 본다.



과거 @@카드사 상담원 했을 때였다. 교육생 시험점수 42점을 맞았다. 관리자가 내 점수를 사무실에서 큰소리로 말할 때 쥐구멍에 숨어버리고 싶었다. 다행히도 같은 동기 친구가 46점이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시험을 망쳤지만 실전을 잘하자고 하인파이브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괜찮지 않았다. 상황과 환경이 바뀌었는데 교육장에 공부하다 보니 예전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알 수 없이 기분 나쁜 감정이 올라오면서 포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과거에 풀리지 않은 감정이 현재 진행형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과거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감정을 정리하고 했다. 과거의 사진첩을 꺼내서 그때 내 감정이 어땠는지 물어보고 있는 그대로 상황을 바라본다. 그때는 큰일처럼 느껴졌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니 별일이 아니었다. 감정을 정리하고 나니 서서히 지금 내 옆에 있는 언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험을 보고 나서 점수를 공개하지 않았다. 달라진 시간도 알게 되면서 과거 시간 속에서 빠져나와서 현재 사람, 환경이 달라졌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simonmigaj,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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