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카오스 상태인 조직문화
사람이 한 부서 혹은 한 회사에만 계속 있다가 보면 그 세상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할 수 없고 소위 ‘방송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조직 문화를 가진 곳’에 대해서만 보기 때문에 자신이 다니고 있는 조직은 항상 초라한 곳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랬고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었으며 이곳만 탈출할 수 있다면 정말 어떤 일을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와중 기회가 닿아서 MBA 과정에 입과를 해서 실제 다른 회사의 모습을 하나씩 살펴볼 수 있는 기회(현직자들과 실제 상태에 대해서 토의도 해보고)를 통해서 천국인 곳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고 어쩌면 너무나 주관적이었다가 조금은 객관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이곳의 조직문화는 어떠한가?
사실 조직문화라는 것은 제조업에서 특히 부서장의 의지에 많이 좌우된다.
다른 곳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거대 제조업의 경우 인구 밀집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Top-Down 방식의 명령 체계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부서장이 싫어하는 것은 애초에 용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부서장이 술을 좋아하면 정말 주야장천 술만 마시고 노래방을 좋아하면 노래방을 골프를 좋아하면 골프만 죽어라 하는 그런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입사하던 때에만 해도 거의 모든 부서가 정말 부어라 마셔라 술만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최근에는 부서장이 술을 싫어하는 경우도 꽤나 나오고 각각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것이 너무 달라 각자 술을 마시거나 활동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보통 이런 회식 같은 업무를 담당할 수 있도록 부서에 CA를 위촉하여 실행하게 하는데 윗사람과 아랫사람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 굉장히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다(스트레스도 상당한 편이다)
근데 뭐하러 아랫사람 기분에 맞춰야 하냐고?
과거에는 아예 신경도 안 썼는데 SCI진단이라고 하여 부서장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생긴 지가 꽤 되었다. 초기에는 그냥 확인 차원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인데 이 회사에서 만드는 모든 시스템이 다 동일하듯 항상 이걸로 순서를 세워서 제일 밑에 있는 사람에게 뭔가의 불합리를 준다. 특히 뭔가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 하는 것이 철칙인 부서장들 입장에서 이런 것으로 불명예를 받으면 향후 진급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굉장히 몸을 사리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발생되는 현상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회식 때 부서장이 갑자기 홀랑 먼저 가 버리는 것(본인 필요한 사람만 데리고 휙 사라짐, 신입사원들이 굳이 부서장 얼굴을 오래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에 착안), 그리고 평가 시점이 되면 정말 화낼 것 같은 상황에서도 어색한 웃음으로 넘어가는 희한한 현상을 마주하게 된다. 매년 봐도 참 적응 안된다. ㅋㅋㅋ
많이 유해졌다고 해도 군대식 문화가 아직도 잔존해 있다.
설비가 망가진 상태에서는 항상 주요 간부들 및 핵심 인력은 다 남아서 기다린다. 솔직히 왜 이렇게 있는지 모르겠는데 사무실에서 그 어색한 분위기와 더불어 마치 저 설비가 죽은 것이 나의 잘못인 듯하게 설명하는 것도 너무 어색한 모습이긴 하다. 일전에는 전 인원이 다 남았는데 지금은 핵심인원만 남으니까 정말 행복하지 않냐라는 생각도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왜 그렇게 빨리 백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거 조금 더 빨리한다고 생산량이 급격하게 상승하거나 나의 보너스가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다들 쩔쩔 메고 저럴까 라는 생각을 계속한다. 위에서 뭐라고 하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이런 문화는 좀 변해야 하는데 변하지 않는 부분 중 하나인 듯하다. 특히 다양한 공정이 있는 Foundry 쪽 부서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날 좀 더 안전하고 천천히 완벽하게 백업을 하는 게 더 낫다고 보고 있지만...
그리고 교육적인 체계가 잡혀있지 못해서 개인의 능력 차가 매우 심한 편이다.
초기에 한 1년 정도는 정말 교육에 매진을 해야 하는 시점에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다. 시간이 생기면 바로 사람을 감축해 버리니 사람들은 항상 바쁜 게 당연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반대로 신입사원들은 전체적으로 한가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촉박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했으니 해결 방법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초기에는 아무것도 안 해서 좋은데 그게 독이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사고가 나고 항상 교육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피드백이 온다. 내가 그런 인원들을 가르치는 부서에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이건 신입사원도 기존 사원도 모두 문제가 있다. 어느 누구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도태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는데 업무가 ‘나의 업무’가 아니고 ‘우리의 업무’ 이기 때문에 굳이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무임승차도 많은 편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전수해 주는 것도 굉장히 귀찮아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대부분 그렇게 지내왔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도 동일하게 그렇게 하는데 어떻게 보면 이런 것이 기술력을 좀 먹는 문화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다만 점점 좋아지고 있는 조직문화의 모습도 있다.
군대식 문화가 전체적으로 많이 사라지고 있다. 설비 고장에 있어서 민감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의 업무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목숨 걸고 오늘 다해야 하는다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출근 시간이 8시면 간부들이 항상 6시부터 와 있었는데(그때는 그게 미덕인 줄 알고) 최근에는 7시 이후에 출근하는 간부들도 늘어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나이가 젊어지면서 주력이 80년대 90년대 생들이 돼서 그런데, 사무직보다는 소위 꼰대라고 하는 사람은 적은 편에 속한다. 라인과 사무실로 나눠져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서 인지는 몰라도 서로의 생활에 대해서는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물론 부서마다 차이는 있다)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하거나 혼자 집중적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인원들은 오히려 이런 생활을 더 즐겨하는 경우도 꽤 보았다.
또한 회식 문화는 정말 대단히 많이 바뀐 것 같다.
일류 기업이라는 부분과 항상 주변에 시선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 나머지 정말 회식에 있어서는 굉장히 타이트하게 관리를 하는 편이다. 9시 이후에는 아예 결재 후 상신도 안되게(돈을 안 준다 이거지...) 해 놓았고 정말 징그럽게 계몽운동을 한 나머지 이제는 그냥 부서 회식을 낮에 하고 밤에는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알아서 노는 형태의 부서도 많이 있다. 회식이 있어서 단합이 잘 안된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나, 최근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을 보자면 회식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이 있어 타 회사에 비해서 회식 문화는 굉장히 선진적(?)인 분위기이다. 회식 때문에 회사를 퇴사하는 경우도 주변에서 본 지라 적어도 회식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사실 뭐 조직문화에 있어서는 위와 같이 반반이라고 생각이 된다. (양념반 후라이드반....)
독보적으로 좋은 것은 없으나 전체적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라고 볼 수 있다. 조직에 워낙 사람이 많이 포진되어 있어서 내가 하는 업무가 너무 조그맣게 보이고 커리어가 쌓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은 현재도 지울 수 없는 부분이긴 하나, 하나씩 차곡차곡 올라가는 점에 있어서는 변화가 너무 많아서 걱정인 사람이 굉장히 선호할만한 직군이라고 생각이 된다. 더군다나 술자리에서 술을 권하지도 여직원이라고 술을 따라야 하는 구시대적인 모습도 이제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전혀 없다고는 말을 못 하겠는데 그냥 바로 신고하면 그분 바이 바이 시킬 수 있다) 다만 결국은 24시간 돌아가고 시간에 쫓기게 일을 하는 이런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항상 최하위의 선호도에서 바뀌지는 않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더 바뀔지가 더 궁금해지긴 한다. 안 바뀔 거 같았는데 바뀐 거 보니 아직은 기대를 걸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10년 이상 고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