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는 학교에 인터넷망 사업이 시작되던 해였다. 플로피 디스크를 들고 다니며 수업을 진행하던 시절을 말한다면 너무 옛날 사람인가? 묵은 짐을 정리하면 종종 플로피 디스크가 발견되는데 이제는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한 때는 나에게 정말로 긴요한 물건이었다. 희한하게도 찾을 땐 없다가 불쑥 이상한 시간과 공간에서 나오는 물건. 방학을 맞이하여 짐 정리를 하는데 오래된 책 사이에 불쑥 떨어져 나온 플로피 디스크와 그 겉면에 쓰인 ‘연수 관련’ 글자. 그것을 보니 잊고 살았던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나의 신규 시절에 선배들은 거의 모두 단정했다. 무채색의 양복 혹은 정장을 입고 8시 전에 출근을 했다. 아침 자율학습 지도가 있는 날이면 7시 30분에 도착해 0교시를 준비했다.
청바지나 미니스커트를 입거나 멋 내기 염색, 반짝이 화장을 하면 선생님들 사이에 ‘튀는 교사’라며 구설수에 올랐고, 교감 선생님에게 불려 가 혼이 나기도 했다. 나는 조직사회의 견고함과 경직성을 경험하며 주변 선생님들을 보고 눈치껏 일을 배웠다.
당시에 학교별로 1명씩 의무적으로 차출되어 연수를 받거나 감독을 해야 하는 공문이 오면, 으레 신규가 했다. 아주 원거리이거나 숙박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주 6일 근무였으므로 휴일을 반납했다. 신규이고 애인도 없어 싱글이었던 나는 휴일을 반납하며 묵묵히 했다. 각종 국가시험 감독(수능 감독도 당연히 포함)이나 선거 개표, 출장 연수 등 체력을 써야 하는 일들을 당연히 어린 교사가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선배 교사들은 “나도 그때 다 그랬어~!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라고 한 마디씩 거들었기에 그냥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리한 일들은 경력 순대로, 불리한 일들은 경력 역순으로 한 듯 여겨진다.
내 뒤를 이은 신규 교사는 매우 곱다 하고 여리 여리한 미술 선생님이었다. 화장기 없고 앳된 모습에 예술하는 사람에게서 풍겨오는 묘한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 막내의 일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기대에 찼는데 안타깝게도 미술 선생은 나와는 정반대인 ‘투사’ 형 신규였다.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조근조근 따지며 이유를 묻는 통에 선배 교사들이 “요즘 젊은 선생들은 달라~!”며 경계했다.
그런 그녀와 내가 교무실에서 큰 소리를 내며 싸운 일이 발생했다. 플로피 디스크에 적힌 ‘연수 관련’ 때문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당연히 신규가 가야 한다고 여긴 원거리 출장 연수를 그녀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연수 담당을 맡고 있던 나는, 내가 했던 것처럼 그녀도 휴일을 반납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달랐다. 의사도 묻지 않고 이렇게 처리하는 법이 어디 있냐고 말이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근엄한 선배의 모습으로 ‘순번대로 하는 일을 너는 왜 거부하느냐? 이게 상식인데... 그럼 내가 또 하리? ’라는 자세로 그녀에게 핀잔을 주었는데, 그녀는 분을 참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호소했지만 당연한 순서를 튕기는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부장이 미술 선생을 달래며 사태를 진정시켰지만 당시 나는 그녀의 문제 제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그래~! 더러워서 내가 간다!”라고 하여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교무실에서 큰 소리 내며 싸운 사건은 나에게도 상처였다.
그 사건이 떠오를 때마다 개운하지 않았다. 깨달음이 느린 사람이라 시간이 차곡차곡 흐른 후에 늦게 후회가 밀려왔고 아직까지도 찜찜하다.
신규나 새로 전근 온 사람들에게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업무를 시키는 것은 당시 학교에 허용되던 상식이었다. 새로운 학교에 발령 나면 어느 정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선배 교사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온몸으로 익혔다. 그러다 보니 후배 교사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그래야 순서대로, 차례대로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상식을 가지고 옳고 그름의 문제를 판단할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함을 느낀다. 상식이 내 감각적인 욕구와 밀착되어 건강한 사고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리한 것은 경력이 적은 사람 순서대로 하는 것이 상식이 되는 순간, 경력에 대한 위계가 생겨 그에 따른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한 내 경험만 보아도 그렇다.
만약 연수가 교육적 훈련을 통해 교사에게 현장 실행력과 행동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강조하여 미술 선생에게 전달하였다면 어땠을까. 그녀가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으나 훨씬 더 건강한 기준이며 잣대이기에 내 마음속의 찝찝함이 덜했을 것이다.
상식은 편의적인 잣대가 되기 쉽다. 지각하는 아이들을 혼내는 것도 상식이고 육아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워킹맘의 지각도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학교에서 실내화를 신지 않은 아이들을 지적하고 지도하는 것도 상식이고, 선생님과 학부모들은 지도대상이 아니므로 학교에서 실내화를 신지 않는 것도 상식이다. 문제는 상식이 몸과 마음이 편한 대로 생각을 만들어 내기에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여러 사람이 생활하는 학교 공간에서 존중하고 배려하기 위해 규칙을 마련하고 준수하려는 일관된 태도가 기준이어야지 ‘학생은 이래야 한다!’라는 상식으로 지도하면 사람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부당함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중학교 아이들은 이런 것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코로나 시대에 상식의 문법이 많이 달라졌다. 늘 해오던 대로 지도했던 나는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과거에 아파도 참고 견디는 것이 상식이었다면 이제는 조금만 아파도 빨리 조퇴하는 것이 상식이다. 또한 밥 먹을 때 친구와 대화하며 정답게 담소를 나누는 것이 상식이었다면 지금은 식사 중에 대화를 안 하는 것도 상식이다. 상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나와 타인의 건강한 관계’를 인지해야만 극과 극인 상식이 통합되어 비로소 아이들에게 생활지도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지나쳐야 할 것들에 대해서야 편안히 마음 가는 대로, 편한 대로, 느낌대로 가더라도 살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놓치지 않고 싶다. 곱다 하고 여리여리하며 투사 같았던 미술 교사를 놓친 뒤에 얻은 교훈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