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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Mar 14. 2022

정년의 꿈

학기 초에 작성하는 직원 명부에 항상 경력 기재란이 있다. 매년 엑셀 경력 계산기를 사용하는데 최근 들어 나의 경력을 말하는 숫자를 읽고 깜짝 놀랄때가 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게 숫자가 부풀어 있기 때문이다.  

 경력 중간중간에 휴직 기간도 입력하게 되어 있는데 그 숫자를 하나하나 입력할 때마다 큰아이 낳고 젖을 먹이며 직장에 울고 다니던 기억과 둘째 아이를 낳고 독박 육아에 허덕이다 휴직을 선택했던 온갖 기억과 감정들이 지나간다. 82년생 김지영과 같이 육아로 인한 여성 경력 단절과 아픔을 말하기에 나는 일상에 무뎌져 하루를 보내기 바빴다. 

 그냥 숫자일 뿐인데 날짜를 세고, 년수를 읽을 때 내 인생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올해 경력 칸을 채우면서 나의 정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계산해 보았다. 최근 동료 선생님의 명예퇴직을 지켜보면서 나의 미래가 성큼 다가온 것 같았나 보다. 나는 항상 공공연하게 ‘정년까지 할 거야.!’라고 지인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금융과 부동산 수익이 거의 없고 노동 수익으로만 살아가는 나에게 직장이 있다는 건 매우 큰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은 어린 두 녀석을 건사하고 뒷받침하려면 일터에서 당당하게 서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현장에서 내 위의 선배들이 하나 둘 명퇴를 결정하면서 본의 아니게 최고참 선배 영역으로 진입하는 건 매우 난감한 일이다. 젊은 선생님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나이 들면 뭔가를 더 잘 알고, 마음도 더 넓고, 경력으로 인해 더 유능하게 일을 처리해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참 불편했다. 거기다 귀와 지갑은 열려있고 입과 눈은 굳게 닫힌 그런 태도를 겸비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나의 정년을 계산해 보다가 최근 불쑥 노쇠한 내 몸의 상태가 떠올랐다. 내 사무실은 5층. 학교는 특성상 특정인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닐 수 있다. 노후된 학교의 계단은 칸칸이 매우 높다. 올 2월에서부터 3월 초까지 종종걸음으로 다녔던지라 무릎이 붓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노구는 초저녁에 침대에 쓰러졌고 급기야는 코를 골고 잠꼬대를 한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고 남편은 걱정을 했다. 그래도 왕년에 날으는 돈가스였는데...          

 “선생님! 로블록스 동아리 담당해주실 거죠?”


작년 가르쳤던 아이가 와서 불쑥 동아리 지도교사 명단에 내 이름을 써넣었다. 수업에서 메타버스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몇몇 아이들이 관심 있다며 동아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사실 주워들은 풍월로 알기에 이 분야에 대해 아이들을 지도할 능력이 전혀 없다. 그런데 요 녀석들이 배우기 쉽다며 유튜브로 연구하자며, 선생님은 함께 공부할 기회와 장소, 동아리 담당교사해주면 된다는 제안을 해왔다. 

겨울방학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과 비대면으로 만나며 메타버스를 접했다. 1시간만 하자고 말을 해도 일단 시작하면 늘 1시간을 넘었다. 맵을 구축하고, 게임을 만들고, 실행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냥 지켜보고 토의 내용을 정리해주고, 내 계정으로 줌 회의를 오래 할 수 있게 주었다.  나이 어린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는 기분이 새롭고 매우 낯설었지만 좋았다.     


  동아리 아이의 말에 슬쩍 정년의 꿈을 다시 꺼낸다. 공무원연금관리 공단의 퇴직금을 검색하려 꺼냈던 인터넷 검색을 접고, 동시에 퇴직에 대한 마음도 접는다. 대신 어린 동료가 내게 공부하라고 한 유튜브 링크를 클릭하며 하나하나 다시 배우는 것에 도전하기로 한다. 새롭게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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