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중에 ‘설마 나도 꼰대?’라는 진단 문항 체크를 하며 주절주절 혼잣말로 변명하는 나를 발견한다.
‘라떼를 즐겨마시는 당신. 어쩌고저쩌고’
같은 교무실에 신규 교사가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바로 임용된 능력자다. 항목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신규 선생님이 겪었을 불편함에 대해 짐작해 본다.
우리 학교에는 20~30대 젊은 선생님이 많은 편이다. 교통이 불편하고 혁신학교라 업무가 많은 곳이니 경력자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규 교사가 꾸준하게 배치되는 곳이다. 동(同) 교과, 같은 교무실, 동(同) 학년 교사 등 나는 MZ 세대들과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관계할 일이 많다. 더구나 학년부장까지 하고 있으니 업무 추진에 있어 협조와 전달 사항 등에서도 그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며칠 전 조퇴를 하는 담임 선생님을 보며 걱정스럽게
“무슨 일이라도?”라고 물었다.
“음. 개인 사정이에요.”
짧고 간결한 답을 하고 그는 돌아선다.
예전에 조퇴를 하려면 종이 문서에 사유를 적고 관리자에게 허락을 맡기 위해 직접 대면했어야 했다. 전자문서시스템으로 바뀌었지만 관리자에게 대면으로 허락을 득한 후에 조퇴 상신을 진행하는 과도기적 상황도 있었다. 최근에야 전자문서시스템으로 간편하게 조퇴나 연가를 신청한다. 이러한 변화 과정 속에서 나는 관리자뿐만 아니라 동료 교사에게 우리 반 아이들 혹은 내 수업 교환 등을 부탁해야 하기에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주저리 하는 것을 보니 ‘라떼는 말이야’를 즐겨하는 선배가 맞다.)
초과 근무를 하며 함께 업무처리를 하는 신규 교사에게
“여친은 있어요?”라고 슬쩍 물었다.
금요일 밤 좋은 시간을 뺏는 게 미안해서 한다는 말이 평소 궁금증과 함께 툭 나간 것이다.
“아니요. 지금은 없어요”
“아!. 그래요?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주위에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줄라고요”
이런...
“저는 연상을 좋아해요.”
“네? 왜요?”
"....."
나도 모르게 말을 뱉어 놓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교사’는 경력과 상관없이 모두 같은 직위를 가지고 있다. 내가 25년 차 교사라도 신규 교사와 항상 동등하다 여기고 스스로 권위의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더불어 나는 선배들이 '꼰대 같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당시에는 꼰대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고, 사생활이라는 개념도 없었는데, 내 이야기와 그들의 이야기가 늘 맞닿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배들이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나 충고를 경험 전달 방식 즈음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KKONDAE : An older person who believes they are always right.
'꼰대' :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나이 많은 사람.
2019년 영국 BBC에서 꼰대(KKONDAE)를 위와 같이 설명했다.
언어는 힘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꼰대’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우리 일상 안에 숨겨져 있던 '권위'적 요소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며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MZ세대'와 결합하며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꼰대'를 거부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수직적이고 관례를 중시했던 직장 문화에서 '꼰대' 필터링은 조직문화를 새롭게 관찰하여 해석하도록 하는 신선함을 주었다. 세상은 변하고, 새로운 문화와 소비의 주역으로 'MZ세대'를 주목하고 있음을 면면히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는 수평적 문화의 확산과 노력이 우리 사회를 더욱더 민주적이며연령의 서열에서 자유롭게 하므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후배 교사의 이모저모를 배려하고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을 꼰대로 몰아가는 듯해 나의 마음은 불편하다.
X세대인 내가 꼰대라고?
내가 꼰대라고 느껴지는 순간, 혹은 지목되는 순간, 진심이 변명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