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수업에 참여한 지 10년이 넘었다. 발을 동동거리는 직장맘이면서도 한 달에 2번씩 꼭 참여했다. 하지만 고백컨데 해당일이 되면 결석하고 쉬고 싶다는 유혹에 매우 흔들린다. 어떤 때는 늘지 않는 지식과 마음의 품에 실망을 느끼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요즘 또 공부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게 너무 버거워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인문학 수업에 참여하는 걸까?' 불현듯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시작하고자 했던 마음 저 편에서는 인문학이라는 시대의 유행에 휩쓸린 호기심도 있었고, 또 다른 편에서는 도덕 윤리과목을 가르치는 직업적 의무감도 있었던 듯싶으나 그건 부분일 뿐이고 나를 움직이게 했던 무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무의식은 아마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을 것이다.
어느 책에서 철학이 사라진 우리 사회를 개탄했던 대목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에서 철학이 인기가 없는 이유로, 하나는 철학이 이 시대 사람들의 철학적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철학 자체의 한계, 다른 하나는 거꾸로 이 시대 사람들이 철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시대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는 철학이 실제 삶과 연계하는 활동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들이 철학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내게 적용시켜 보아도 매우 그러한 듯싶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의 어린 아니 젊은 시절은 철학, 인문학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삶으로 도배되어 있진 않았나 싶다. (사실 지금도 비슷하지만) 대학교 다닐 때 미 영사관 방화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풀려난 선배가 시대와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운운할 때, 임용고시 정보를 교환하느라 정신없었고. 한총련의 사상성을 강조하던 후보보다 정수기와 화장실 화장지 설치를 약속했던 후보를 총학생회로 선출했던 우리들은 '응답하라 1994'에서 처럼 즐거웠고 편리했고 참 가벼웠다.
치열해진 경쟁을 뚫고 더 편리해진 생활을 누리면서 마치 그것이 혹독한 노력의 결과 혹은 성공으로 착각하고, 더 질적으로 높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앞으로 전진하면서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삶'에 대해 그만큼 고뇌한다. 아마 인간의 본성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팅되어 있어서 멀리 벗어나려 할 때 각성 작용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를 미친 듯 바쁘게 돌아가라고 채찍질하는 사회를 보게 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인문학 수업에서 늘 주제가 되는,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과 시간에 대해 끊임없이 철학에서 찾아보고 또다시 비판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존재와 의미를 성찰하는 것, 그것이 '사는 것'이며 곧 진정한 삶의 한 모습일 듯. 진정으로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면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삶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 철학 혹은 인문학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에 진심을 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