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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Nov 22. 2021

백수에 대한 단상

  우리에게 백수란 어떤 이미지일까?     

  먼저 개그 프로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축 늘어진 운동복을 입고 동네 슈퍼 앞 마루에 앉아 스쿠류바를 입에 물고 넣었다 뺏다를 반복하거나, 두꺼운 책을 옆에 끼고 그 두께만큼의 안경을 쓰고 있고 고시 준비로 온갖 꾀죄죄함을 겸비하거나, 또는 취업에 실패해서 하릴없이 의욕 상실로 인해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는?   

  

생각해보니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러나 요즘은 그들이 안쓰러운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20대 후반 30대 초인 우리 조카들을 살펴봐도 취업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경험하며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취업 준비에 자신의 온 성실함과 열정을 바치고 있다. 형님들은 행여나 아이 기가 죽을까 열심히 뒷바라지를 묵묵히 해오고 있지만 그 속 타는 마음을 누가 모르랴.


  청년의 노력과는 별개로 사회 구조가 청년실업을 양산하고 있는 형국으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업자=무능력자=루저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차있다. 수중에 돈이 없다면 꿈도, 인간 관계도, 성공도, 이룰 수 없는 세상, N포 세대. 그 말에서 느껴지는 청년들의 포기가, 점점 커가는 내 아이를 보며 남일 같지 않아 속이 상한다.       


 베이비 붐 세대(55~63년생들)들은 경제적으로 힘들었을지언정, 노력하면 얻을 것이 많았다고 평가된다. 학력과 기술, 성실 중 어느 하나만 갖추었다면 먹고사는 직장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세대 차이나 계층 차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아 ‘한 지붕 세 가족’이나 ‘응답하라 1988’처럼 고만고만한 삶의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저축하고 알뜰살뜰 모으면 지하에서 지상으로, 2층 양옥집 주인으로 살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모님은 젊은 사람들이 놀면서 청년 수당을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하셨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부모님의 체화된 경험을, 설명만으로 변화시키기 어렵다. 당신의 손자들도 백수가 될 수 있다고 하니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시키고 좋은 직장 잡아야 한다며 이야기가 쳇바퀴 굴리듯 제자리서 돌아간다.    

       

 나는 집, 차 등 대출에 꼼짝없이 사로잡혀산다. 물건을 사러 가면 카드로 구매해야 할인도 되고, 장기 대여 대출 금융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더 많은 금융 서비스를 이용받을 수 있기에 소비의 합리성을 배운 사람이라면 대출 시장의 더 충실한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욕구가 높아지고 소유가 많아질수록 더 그러하다. 그래서 돈 없는 백수의 삶은 갖고 싶은 것을 못가지며 불편함을 감수하기에 빈약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 동네엔 멋진 백수가 한 명 살고 있다. 13년부터 인문학 공부에 참여하고 있는데 모임을 주도하는 선생님이 백수다. 30대에 몸이 안 좋아 공무원 퇴직을 했고. 그러다 홀로 있는 시간에 인문학 공부에 푹 빠져들었다 한다. 우연한 기회에 강의를 하다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수 십 년간을 이어오고 계신다. 소속된 단체 없이 어디 얽매이지 않고 잘 살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로 소박하게 소소한 경제활동을 하시며 10대부터 60대까지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도 하고 문어발식 관계도 매우 넓다. 공무원으로 치면 정년을 한창 넘긴 나이지만 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다 보니 계속 일을 하고 있다. 그 백수 선생님은 하얀 머리의 60대 후반의 노인이지만 초롱한 눈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만나고 있는 기인 중 하나다.

 

  백수의 삶을 환영할 수 있을까?

포기해서 어쩔 수 없이 백수가 된 삶이 아니라 틀에 박힌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열린 태도로 사귀고, 돈이 없어도 늘 당당하고, 경계가 없는 공부를 하고, 길 위로 나서는 담대함을 가졌다면... 과거 연암 박지원이나 방랑객 김삿갓처럼 산다면 동경하는 사람들이 생격나거나 혹은 시대의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너무 평범하고, 보통의 사람이다.  세상이 강조하는 불안감을 내면의 소리로 강화하며 실수와 민원 발생의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는 공무원의 습관이 나의 일상에 깊게 베어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결점을 노출하고 싶어 하지 않는 ‘자의식’이 성찰과 여유보다 휴식과 힐링을 갈망한다. 그래서 백수에 대해 아무리 긍정적이려고 애를 써도 불안감이 한쪽에 자리잡고 있다.


 청년 실업에 대한 뉴스를 보며 우리 아이가 백수의 생활을 하게 된다면 가정의 상황을 그려본다. 여태껏 백수가 되지 않도록 길러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했는데 만약 아이가 백수로 살아갈 시간이 길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물어 본다.  


  '자신을 믿어라'라고 말한 백수 선생님의 말처럼 나도 아이에게 같은 말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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