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영어학원 옮기고 싶어.”
긴 겨울 방학동안 별 탈없이 학원을 잘 다닌 큰아이가 불쑥 불만어린 목소리로 내뱉는다.
고등학교를 대비해서 좀 더 잘 가르치는 학원을 옮겨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싶다는 것이 아이의 핵심이다. 부모의 마음으로써는 학원보다 자기주도로 진짜 ‘자기 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람인데, 아이는 혼자서는 역부족이며 학원을 다니며 관리해주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어야 안심이 된다고 말한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많은 부분 공감하지만, 함께 학원투어를 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되었다. 안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공부 잘하고 싶어 도와달라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원망을 듣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함께 알아보리라 약속을 했다.
초등학교를 보내며 학원대신 공동육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방과후를 보냈다. 학원에 앉아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 자유로이 다니며 즐겁게 자유롭게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한다고, 그것이 아이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어떤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당시 아이를 돌봐줄 양육기관이 필요했고 또 아이가 학습 분야에 있어서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영민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자유롭게 생활하더라도 충분히 잘하리라는 생각을 갖게 한 듯싶다. 그러나, 이는 너무 순진하고 막연한 믿음이었다. 아이는 영민하였지만 성적과 등수를 올리려면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고, 실력을 가지려면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중학교를 보내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는 쏟아지는 평가와 경쟁에 지속적으로 열등감을 경험하였으며 결국은 나는 아이와 나의 자존감이 더 떨어지기 전에 학원을 데리고 가야 했다.
처음 영어학원을 갔을 때 반 편성을 위한 테스트를 보았다. 기초적인 문법이 엉성했던 아이는 긴장감과 낯설음에 낮은 점수를 받았고, 아이와 함께 상담을 받으며 당연한 것이라고 낯 뜨거움을 가라앉히려 했으나 멍하니 있는 아이가 한심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용모는 모범생처럼 생겼는데 공부는 많이 안했구나!.’라는 평가에 불끈 마음의 불덩이가 입으로 쏟아 나오려 했지만 아이가 겪었을 속상함이 마음이 쓰렸다.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면 잘할 수 있단다.’라는 말에 어찌 되었든 과거는 정신 못 차린 불편함의 경험이 되어 버렸다. 속상함을 안고서 구차한 변명이 될까싶어 말 한마디 안하고 결재를 하며 학원을 보낸 것이 중2 시작되면서였다. 그런데도 아이의 영어 성적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열심히 해도 긴장감으로 인한 실수는 계속되었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의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했다. 아이는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주는 학원을 옮기고 싶어 했는데, 사실 이것은 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소통의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하루에 60개씩 단어를 외우며, 매번 평가를 보며 미통과시 재시험을 보고 더불어 강도 높은 문법과 독해 수업을 해야 한다. 아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보인다. 순간 대견함이 올라오지만 반면 슬픈 마음도 감출 수 없다.
다시 실력으로 반을 가리기 위한 테스트를 보았다. 아이를 데리고 온 학부모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순서를 기다리려면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테스트 결과를 보며 실장이 나와 설명을 시작하고 홍보 자료를 보여주었다. ‘자물쇠’반, ‘종일 자물쇠’반, ‘잠만 집에서 자면 됩니다.!’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보며 17살 딸아이의 고등학교 의 무게감이 가슴을 억누른다. 등록을 하며 학원을 나서면서 ‘우리 조금만 고생하자, 넌 잘할 수 있을 거야’란 말로 ‘SKY 캐슬’ 예서엄마를 흉내 내었다.
딸아이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학원을 다닌다. 학교를 마치면 얼른 버스를 타고 학원을 가며, 저녁을 먹을 시간이 빠듯하여 학원 근처에서 대충 챙겨 먹으며 학원에 가서 숙제를 검사 맞고 너무 많이 틀리면 재검과 재시험을 오가며 보강을 받고 10시가 되면 모든 것이 종료되어 귀가 한다. ‘잠만 집에서 자면 됩니다!’란 말도 과분하여 대충 씻고 나면, 어마어마한 학원숙제를 해야만 한다. 3월 2주가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갔다.
‘엄마, 나 감기 걸린 것 같아. 몸이 아파!’
‘소윤아. 병원 들렀다가 학원가! 알았지? 하루 빠지면 니가 더 힘들잖아.’
평소 생각과 다르게 말이 불쑥 튀어나갔다. 전화를 끊고 내 말에 스스로 놀란다. 아이를 안쓰러워하면서도 학원에 빠질까봐, 지쳐 포기하는 전조 증상일까봐 방어를 하는 나의 불안감을 마주한다. 아니 이게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이와 통화 후 1시간의 퇴근길에서 나를 달랜다.
‘의식과 생활이 분명히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너는 대한민국의 일개 학부모일 뿐이라고.’
토요일 아이는 학원을 마치고 외부 동아리 활동 모임에 가겠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활동했던 곳인데, 올해 일 년 계획을 짜야 한다며 말이다. 9시 넘어 들어온 아이의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학교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학교 급식이 맛있다는 이야기, 4월 수련회 갈 때 장기자랑으로 아이돌 댄스를 추기로 해서 안무를 익혀야 된다는 이야기, 연극 동아리 면접을 볼 거라는 이야기, 2주 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아이는 17살.
하고 싶은 것도, 자신에 대한 기대도, 이성에 대한 설렘도, 주위의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간절한 시기에 놓여 있다. 아이가 다치지 않기를, 장점을 버리지 않기를, 내가 부모로써 지켜봐 줄 수 있기를, 스스로 자처하여 괴물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