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이 심하다. 아마도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에 앞서 늘 위험요소를 떠올릴 때가 많다. 가령,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나 시험 문제를 출제했을 때 실수할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불안하다고 해서 늘 부정적인 상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너무나 긍정적인 과대망상에 불안해한다. 발표할 때 너무나 멋지게 해서 청중들의 박수를 받거나 혹은 글을 너무 잘 써서 많은 ‘라이킷’을 받는 상상을 하면서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불안해한다. 너무 웃기지만 나는 대입을 치르고 혹시 만점을 받아 TV에 나오면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며 불안했던 적도 있다. 성적표를 받아 들고서는 그런 고민하기에 너무 터무니없다는 것을 실감했는데 이렇듯 어이없는 불안을 만든다.
교사 연수에서 ‘자기 이해’를 위해 종종 에니어그램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누가 봐도 6번 유형이다. 불안을 에너지로 삼는 유형인데 월등하게 점수가 높다. 놀라운 것은 교사 집단에 6번 유형이 많다는 점이다. (물론 그 가운데서도 내 점수가 유독 높은 편이긴 하다.) 유목화하고 단정을 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직장에서 나와 같은 유형이 많다는 것은 위안이 되는 일이다. 나만 불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나의 불안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딸아이의 입시, 미래 자산에 대한 무지, 연로하신 부모님의 돌봄 문제, 직장에서의 도태 등이 현실로 다가왔다.
몇 달 전 메타버스에서 가상화폐를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했다는 젊은 교사의 글을 접했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웬만한 수업 사례발표들을 봤던 나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여태껏 선생님들의 발표를 들으며 머릿속에 상상할 수 있었는데 새로운 용어와 낯선 수업방식은 정말 가늠이 되지 않는다. 마음이 매우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너무 좋아하기에 이 국면이 내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마찬가지로 앞서의 문제들은 내 힘으로 해결해야 할 무겁고도 심각하며 어려운 것들이다.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에 불안하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라는 책에서 현대의 3가지 불안의 원인을 이야기한다.
첫째가 사랑의 결핍. 돈, 명성, 권력 추구를 사실상 사랑의 갈구로 보는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인간은 사랑받지 못하면 불안을 느끼고 자아상이 해체되니 말이다.
둘째는 속물근성. 남들과 비교해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면 스스로가 더 못나 보이기에 불안하다. 거기다 여기저기 광고나 언론 등 각종 미디어에서 속물적 가치를 추앙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불안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셋째는 능력주의. 근대 사회의 평등주의는 신분을 해제하고 능력주의 문화를 확산하였다. 전근대 사회가 신분에 맞는 만족하는 삶을 추앙했다면 근대 이후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이야기한다. 특히나 현대 사회에서 경제적 부는 성공을 의미하며 강력한 지위를 결정한다.
나의 불안 속에 보통이 말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차례대로 따라가며 한 꺼풀씩 걷어내면 더 근원적인 물음과 만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원하는데? 사랑? 경제적 부? 능력?
이 모든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절망하면서도 결국은 그런 것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해방을 원한다. (아! 도덕 교사의 뻔한 답이라 욕하지 마시라.)
새롭게 맞이한 문제들을 마주하며 정말 불안하지만, 이것들은 내 삶에서 치열하게 싸워나가야 할 것들이다. 사랑받고 능력으로 인정받아 부를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인격적 성숙으로, 진정한 어른으로서 살아 내기 위해 ‘나’의 방식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실컷 불안해하자. 하지만 그 불안 안에 머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