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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Jan 31. 2022

K-장녀, 바보가 되다.

“누나? 이번 설에는 어떻게 할 거야?”


명절 때가 되어 든든한 막내 남동생이 먼저 물어본다. 카톡을 보며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한 발 늦었다. 나는 집안의 대소사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대화나 주제든 남매 대화방에서 장녀인 내가 더 잘 알고 주도했으면 하는 무의식이 작용하는 것이다. 부모 형제의 생일을 챙기고 조카들의 졸업과 입학을 축하해주며 애경사를 주관하며 든든한 맏언니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친정엄마가 말씀하시기로는 어린 시절에 나는 너무나 힘이 되는 맏딸이며 남편보다 의지 되는 장녀였다고 한다. 그런데 경기도로 올라오고 나서부터는 멍청해지더니 결혼 후는 완전히 바보가 되었다며 비아냥 거리며 타박을 한다. 그 말에 동생들은 너무나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동의의 뜻이 있기도 하지만 언니, 누나를 덩달아 놀리는 통쾌함이 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기가 셌다. 동생들을 괴롭히던 아이들을 찾아가 욕지거리를 해주고, 동네 대장처럼 굴었다. 그리고 엄마를 도와드리며 집안일을 했다. 늦은 밤까지 일하는 엄마를 위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놓는 착한 딸이자, 동생들을 엄하게 다루는 무서운 누나이자, 홀로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당시에 초등 1학년 입학하면 부모님들이 순번을 정해 학급 청소를 했는데, 나는 두 동생들의 학급 청소를 성실히 도맡아 했다. 같은 학교에 다닌 고학년은 선생님들의 심부름꾼으로 제격이었다. 나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 학급에 청소봉사를 했기에 학교에서도 칭찬받는 맏이였다.


  동생들은 어린 시절 나를 무서워했다. 잘못하면 엄마보다 더 심한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동생들은 부모님의 묵인하에 이루어지는 엄한 가르침에 하소연도, 찍소리도 못했다. 그래서 초등학생이었던 남동생은 일기장에 ‘우리 큰누나는 악마다. 산타할아버지 제발 누나를 멀리 데려가 주세요!’라는 글을 써놓기도 했었다. 그 일기장이 우연히 나에게 발각되어 크게 혼난 적도 있었다. 

     

 내가 야무지긴 했어도, 아이였는데 늘 장녀로 의젓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살았다.     


 ‘집안에 장남, 장녀가 바로 서야 번성하는 기라. 아버지가 멀리 배 타고 안 계신 우리 집에 니가 야무지고 공부 잘해야 동생들도 본을 받고 하는 기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그래도 가락지 끼는 손은 따로 있다. 니가 엄마한테는 가락지 끼는 손가락이데이.’      


  엄마는 남한테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험담 한번 하지 않는 무던하고 묵묵했던 엄마였지만, 그 많은 아픔과 속상함을 나에게 위로받길 원했다. 자는 머리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날 감정을 쏟아내는 엄마를 다독이고, 내가 잘하겠으니 속상해 마시라는 말을 했었다. 어린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삶에 지나치게 감정 이입되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분신 같은 존재였음을 이해했고 ‘장녀 차별’ 대우를 받아들이며, 엄마가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 그랬기에 엄마 눈에 마음에 쏙 드는 딸이었으리라.      


 하지만 경기도로 발령이 나서 혼자 떨어져 살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엄마와 강제 ‘거리두기’가 시작된 것이다. 엄마가 나를 멍청이, 바보가 되어갔다고 표현한 이유도 부모님 의견에 반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반대하는 결혼을 강행하고 나서 엄마의 ‘장녀 바보 발언’은 수위가 높아져 갔다. 


 내 머릿속에서 엄마의 이미지를 떨쳐내는 것이 참 힘들었다. 

‘엄마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

'엄마한테 혼나지 않을까?' 

'엄마에게 말하지 말까?' 등등.


숱한 갈등 상황에서 소심하고 또래보다 한참 어린 수준의 나를 발견하며, 의존할 대상을 찾아 도망가고 싶었다. 

 독립 1년 후에 두 동생들도 고향을 떠나 나와 함께 살았다. 물론, 장녀로서 동생들을 잘 돌보아야 할 의무감을 떨쳐 낼 수 없었지만 성인이 되어 함께 살게 되었을 때는 어렸을 적 보다 편했다. 악마 같은 언니, 누나가 아니라 피를 나눈 동기간으로서 살갑게 지냈다. 그 기간 동안 동생들은 나의 구멍과 허접함을 보았으며 장녀의 무게를 짊어질 인간이 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장녀의 책임감을 조금 내려놓고 허점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동생들과 편한 관계가 되었다. 

   

  나도 엄마가 되어 딸을 낳아 기르며 친정 엄마의 마음을 짐작한다. 큰아이에 대한 기대감과 바람은 둘째와 다르다. 마냥 예쁜 둘째보다 큰애에 대해서는 잘 키우겠다는 다짐과 결의가 더 강하다. 더군다나 첫째에게 하는 행동은 모든 것이 다 처음이어서 긴장되고, 걱정되고, 조심스러움도 강해 조바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첫째가 엄마의 심한 잔소리가 머리에서 빙빙 맴돈다며 이것은 '가스 라이팅'이라고 했다. 나의 잔소리 제압을 위해 한 말이었는데 순간 아찔했다. 나에게 옹골차게 간섭하지 말라는 딸의 외침을 들으며 내 맘을 몰라주는 것에 대해 서운함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하는 시대의 소리임을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이번 명절에도 친정엄마는 바보 발언을 하실 것이다. 웃어넘길 수 있는 노인네의 푸념이다. 기가 세고 의젓한 장녀가 아니라 바보 같더라도 동생들에게 징징거리는 장녀가 내 모습이 맞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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