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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저 Sep 17. 2022

혼자이고 싶은 보통날

뉴스레터 <막차> 8호 백업

요즘처럼 미뤄둔 일이 발등을 활활 태우는 때에는,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아.... 혼자있고 싶다. 어디 산이나 멀리 혼자 떠나서 밀린 글이며 과제며 책이며 전부 해결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돌아오고 싶어. 지금 이 순간의 나처럼, 누구나 혼자이고 싶은 때가 있다.


현대는 더없이 많은 관계망을 촘촘히 이루고 살다보니, 온전히 혼자이기도 쉽지가 않다. 카페에서 막차의 에세이라도 마감할라치면 꼭 푸시 알람이 울려댄다. 오늘만이 아닌 '오늘만 특가' 광고일 때도 있고, 자주 오지도 않던 좋아하는 아이돌의 새로운 글 알람일 때도, 일상을 견디느라 떠들썩한 친구들의 카톡일 때도 있다. 나 글 좀 쓰자! 속으로 외쳐보지만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있는 것은 역시 '방해금지모드'가 가장 효과적이다.


그냥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은 때도 있다. 도저히 하는 일에 진전이 없을 때, 종종 누구에게도 마음을 설명하기 어려울 때, 무언가 서글프거나 벅찬 기분을 해소할 수가 없을 때. 그럴 때. 길을 걷다가 그럴듯한 바가 눈에 잡히면, 발걸음을 멈추고 들어가 칵테일을 한 잔 마시고 나온다. 메뉴는 그날 기분에 따라 고른다. 대체로 독하고 특이하고 도전적인 종목으로. 칠링-러브-팝송의 선곡리스트에 나올 법한 잔잔한 음악들과 함께. 일부러 바 자리에 앉아, 있는대로 가진 고독을 씹어대며. 때로는 다이어리의 일정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책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영화에서는 로맨틱하고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던데 지독하게 혼자를 즐기고 있는 탓인지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어 주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혼자이면서도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은 아이러니한 마음이 아닌가 싶지만.)


최근에는 혼자 술을 마신지 오래되었다. 원래 나는 술을 혼자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않는 가족들과 함께 살다보니 혼술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도 아니거니와, 나에게는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혼술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 긍정은 하지만 말이다).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은 갈 데까지 갔다는 뜻이다. 도무지 수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날, 마치 벼랑 앞에 서서 시퍼런 물에 다이빙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된 것처럼.


고독은 그쯤 해두고, 술의 효험 덕인지 한번씩 혼술을 하다보면 갑자기 정신이 맑아지면서 힘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술을 한 잔 들이키고, 다음날이 되면 분주함, 외로움, 복잡함이 뒤섞인 상황에 있는 꿀꺽 몸을 던진다. 그토록 피하고 싶던 깊은 물에 잠겨있다가 떠오를 수 있는 힘은 다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래 술은 혼자 마시면 안되지. 이 일을 헤엄쳐 해내는건 나 혼자지만, 혼자 마신다고 이 기분이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


언젠가 혼자가 될, 독거의 가구로 영영 사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당장이라도 유학을 떠나거나 먼 곳에서 일을 하게 괸다면 홀로 삶을 사는데에도, 술을 마시는데에도 지금보다 분명 익숙해질테다. 조금 울적한 글이 되어버렸지만 결론은 나 혼자서는 모든 일을 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이빙의 순간에 저 멀리 물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먼저 떨어본 자들이 주는 안도. 술을 마시는 일조차 그렇다. 안 그래도 험한 세상, 혼자 만취했다가는 역사 안 플랫폼에 드러누울지도 모르는 일. 혼자 있고 싶다며 미뤄둔 알람을 열어보자. 모두가 나처럼 떨어질 듯 말 듯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술이 해답은 아니지만, 함께 마시는 술은 실마리를 제시해줄수도?


2022.06.08




뉴스레터 <막차>는 술을 사랑하는(사랑했던!) 두 사람, 

버드와 이저가 매주 보내는 가벼운 음주사담 뉴스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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