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이 막 넘어갈 무렵,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나는 그때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 근무 중이었고 남편은 사회 초년생으로 주말에만 서울에 있는 집에 올라오며 지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큰 기대 없이 나갔던 소개팅이었다. 소개팅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다고 하면 다들 놀라지만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원래 잘 알던 사이인 것처럼 오랜 시간 편하게 대화했다. 우리는 세 번째 만났을 때쯤 정식으로 연인이 되기로 했다. 그렇게 4년 넘게 연애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주에 한 번은 꼭 만났다. 주말만 둘다 서울에 갈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주말에 가족 행사와 다른 약속이 겹치면 어떻게 해서든 휴가를 맞췄고, 다른 약속은 뒤로 한 채 주말은 우선적으로 서로에게 집중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학생 때처럼 불같이 만나진 않았던 것 같다. 서로의 개인적인 시간을 배려했고, 부담이 되는 선물이나 무리한 데이트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잔잔함이 좋았다. 왜인지 이 사랑은 오랜 시간 변하지 않고 고요히 이어질 것 같아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로를 잘 알게 되고 의지하게 되었을 때쯤,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고 아팠다. 어릴 적 아빠와의 이혼 후에 우리와 헤어져 지내는 동안 엄마는 홀로 견뎌왔기에 성인이 된 나에게 기댈 곳을 찾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 역시 감정이 예민하고 불안이 많은 사람이었다. 엄마 앞에선 애써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의 슬픔이 내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마음에 빈 자리가 점점 사라져갔다. 그럴 때마다 자꾸만 그 화살이 남편에게로 갔다. 무덤덤한 남편은 그저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일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늘 안심을 시켜줬다. 내 생일이었던 날, 엄마와 통화를 했지만 그날도 엄마는 울었고 나는 그저 괴로웠다. 통화를 마친 후 생일을 맞아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서 남편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나는 울었고 죽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남편도 울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는 여전히 아프지만 그래도 이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 자체로 나는 엄마에게 고맙다. 어릴 적에는 사는 것이 너무 힘겹게 느껴져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을 계산해 볼 때가 있었다. 이제는 조금은 달라졌다. 엄마도 살아내니까, 나도 잘 살아내야지. 어느 날 남편에게 그 시기에 미안했다고, 힘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남편은 담담하게 "참을 만했어"라고 답했다. 그 시간을 함께 견뎌 준, 그 힘든 시기를 지나 "너와 내가 지금 여기 있잖아"라고 말한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각자의 회사 생활로 인해 주말 부부로 지낸 지 1년이 지났을 때쯤, 나는 정말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에게 여러 번 이야기를 하니 처음에는 3년, 6년, 9년차마다 찾아오는 고민 아니겠냐며 웃었다. 그러다 어느 날 "민지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퇴사를 했을 것 같다"며 나를 믿어주었다. 퇴사를 하고도 일 년을 유지한 주말 부부 생활, 그리고 나의 첫 프리랜서 생활. 그 시기에 남편은 원치 않는 부서 이동을 하고 난 뒤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가 인생의 전환점라고 느꼈던 것 같다. 이제는 정말 한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되어야겠다고. 결국 내 퇴사에 이어 남편도 퇴사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 남편은 무계획이다. 하지만 괜찮다. 뭐라도 하겠지. 주변에서는 정년까지 문제 없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왜 그만두냐고 했지만, 우리가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려고 태어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는 '진짜' 결혼생활을 앞두고 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곳에서 우리가 남은 인생을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