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말장난

by 단호박

살면서 가족에게서 느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떠올려보자. 당연히 내 지난 삶을 돌아보면 아빠와 엄마, 나와 동생이 다함께 여행 다니며 살았던 그 시절일 것 같지만 아니다. 내가 가장 행복하게 지낸 시절은 첫 취업을 하고, 회사와 집만 오갔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빠와의 사이가 더 돈독해졌을 때쯤 동생이 군대에 갔다. 그래서 집에는 나와 아빠, 그리고 강아지 민콩이만 남게 되었다. 내가 첫 취업을 했던 11월은 아빠의 회사 일이 가장 한가할 때다. 그래서 오전에만 일하고 퇴근할 때도 있고, 날도 금방 어두워져서 약속이 있어도 집에 일찍 들어왔다. 나는 그때 이 회사에 얼마나 다닐지도 몰라 자취를 쉽게 결정할 수 없었고, 인천과 파주를 오가며 회사 생활을 했다. 파주에서 6시에 퇴근하고 셔틀 버스를 타고 합정에 도착해 지하철을 탄다. 1호선으로 갈아타고 또 동네로 가는 버스에 탔다. 집에 도착하면 8시가 넘어있는 시간.


집에 도착하면 강아지가 문앞까지 나와 나를 반기고, 아빠는 내가 먹을 저녁을 차려 두었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8시까지 나를 기다렸다가 함께 밥을 먹었다. 할머니가 몇 년은 더 먹을 수 있게 만들어놓고 간 된장으로 만든 된장찌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김장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 아직도 집에 남아있는 할머니를 느끼며 아빠와 저녁을 먹고, 민콩이와 산책을 나갔다. 그때 민콩이는 다섯 살쯤이었다. 산책할 네 다리가 아주 튼튼해서 오래오래 걸어도 신나했던 그때. 민콩이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민콩이가 좋아하는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았다. 민콩이는 그 대야에 들어가 꾸벅꾸벅 조는 걸 좋아했다. 강아지가 몸을 녹이는 동안 나도 샤워부스에서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면 민콩이 발을 씻기고 나와서 따뜻한 바닥에 누워 TV를 봤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고요했지만 아빠와 강아지가 주는 마음을 온전히 받을 수 있었던 그때. 언젠가 엄마한테도 동생에겐 미안하지만, 그 시절이 본가에서 지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하며 내 고향 인천과 하루하루 더 멀어졌고, 결국 독립을 하고 30대가 되어서는 결혼을 했다. 올 여름은 이상하게 아빠와 크게 다퉜다. 아빠의 마음을 우선적으로 내세워, 틈이 없는 하루를 보냈던 나에게 쉴 시간을 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아빠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창피하게 울 정도로 왜인지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날 아빠를 만난 후로 두 달 동안 아빠를 만나지 않았고, 당연히 강아지도 보지 못했다. 두 달이 지났을 때쯤 강아지가 보고 싶었다. 아빠에게 못 이기는 척 집에 간다고 이야기하고 오랜만에 밥을 먹었다. 이렇게 다툰 적이 오랜만이라 서먹했지만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으니 그냥 좋았고,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행복했다. 날이 좋아 현관 앞에 나와 햇볕을 쬐는 민콩이를 봤다. 이제는 13살이 되어 할머니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그냥, 마냥 아기 같았다.


그 만남으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았던 지난 9월, 민콩이가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손이 떨렸고 눈물만 나왔다. 그날 아침에도 동생이 강아지가 간식 달라고 짖는 영상을 보내줬는데 왜? 이해가 되질 않았다. 병원에서는 강아지가 위중한 상태라고 했고, 우리는 치료 후기를 끝없이 찾아보고 의사 선생님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강아지의 회복을 바랐다. 서울에 있는 것조차 불안해 모든 일을 빠지고 인천에 내려가 매일 면회를 갔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쯤, 민콩이는 세 번이나 수혈을 받으며 여러 치료를 시도했지만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그리고 민콩이가 가지고 있는 병에서 나타난다는 피멍이 몸 구석구석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휴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시도해 볼 약을 미리 구매해놨지만, 치료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동생도 이제는 강아지가 덜 힘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민콩이는 집으로 와 첫날은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면서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시간을 보냈다. 민콩이가 집에 온 지 사흘이 지났다. 민콩이는 마지막으로 뒷다리에 힘을 주고 아빠에게 가려고 일어났다. 그리고 소리를 내어 아빠를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떠났다.


민콩이가 가고 며칠은 이상한 꿈을 꿨다. 주변의 강아지들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내가 알게 되고 그를 구하기 위해 애쓰다가 깨어나는 꿈. 꿈마다 내가 실제로 알고 있는 강아지들이 나와서 자꾸만 진짜 일어난 일처럼 착각했다. 내 안에서 아직 해소되지 않은 죄책감 같은 것 때문일까?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갖고 싶었던 신발을 샀던 날, 딱 한번밖에 신지 않았는데 민콩이가 앞코를 다 물어뜯어 놓았었다. 너무 속상해서 울면서 짜증을 냈다. 그게 자꾸만 생각났다. 민콩이가 그 서운함보다, 그 뜯어진 신발을 신고 동네 산책을 나갔던 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해 주길. 가족들이 모두 출장을 갔을 때, 우리집에서 나와 단 둘이 보낸 시간을 나만큼이나 오래 기억해 주길.


이제는 오래된 인천 주택에서 살았던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둘이나 떠났다. 민콩이는 이제 할머니를 만났을까? 사람은 너무 오래 산다고 불평하던 나인데, 왜 그렇게 민콩이의 삶은 짧게만 느껴질까. 지금쯤 콩이가 할머니를 만나 못다한 포옹을 하고, 그토록 좋아하던 할머니 침대에 함께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콩이와 할머니가 나에게 준 사랑만큼 나도 이 세계에서 열심히 사랑하고 그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그토록 다시 오고 싶었던 폴란드에 와 있다. 남편이 내 말투를 흉내 내며 말실수를 할 때마다, 나도 따라 웃는다. "우리 식당할까?" "우리도 숙소 운영할까?" 가는 곳마다 다 좋아서, 실없는 농담을 하며 함께 걷고 있다. 살아야겠다. 잘 살아서, 다시 만날 이들과 기쁘게 웃어야겠다. 할머니를 만나 평생 '계란'을 '결란'으로 썼던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간식을 좋아한 탓에 '돼지콩'으로 놀림 받았던 민콩이의 머리를 오래오래 쓰다듬어야지. 우리끼리만 아는 말장난. 사랑이 남기고 간, 그 말장난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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