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한국에서 살다 보면 자기혐오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나 수험생이라면 더더욱. 올해까지 포함하여 오랫동안 학교를 다닌 나는 그동안 나와는 안 맞는 한국의 입시제도가 참 불만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책과 영화 속으로 도피하였고 그 덕분에 또래 아이들과는 좀 더 깊은 예술관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은 내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고 알아보는지 또는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 따위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것은 성적이라는 말로 감싸진 '성실성'이다. 그래, 그 성실함. 내가 한평생동안 시달렸던 나의 열등한 부분이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인생에 흥미라고는 없는 유유자적하고 무기력한 어린아이였으며 성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향락과 유흥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는 학생으로서는 굉장히 일탈적이었다. 수업보다는 책이 좋았고 시험보다는 영화가 좋았다. 그러다 고3이 되니, 막상 내가 현실을 도피할 동안 많은 아이들이 현실과 싸워왔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이 체제가 적응되고 마음에 들어서 그런 친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다들 그냥 버티며 사는 것뿐이라며 마치 회사직원이 5명밖에 안 되어서 매일 밤 철야근무를 해야 하는 35살의 대리들처럼 이야기했다...(나는 가끔 이렇게 세상을 통달한것만 같은 눈빛을 하는 어린아이들이 무섭다)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나랑 안 어울리는 고3을 시작했다. 3월, 6월은 점수가 올랐지만 제일 중요한 9월 모의고사 점수가 훅 떨어졌다. 막상 이런 결과를 받으니 지난날이 후회스럽고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하지만 정말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1등급을 받을 만큼의 노력을 했는가? 의 답은 이미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아마 지금부터 공부한다고 해도 몇십 년을 수학만 한 의대준비반 아이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절대 나를 따라 할 수 없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낀 많은 감정과 사유, 또 나만의 경험을 사회에 나가서도 못 배우겠지. 그러니 아쉬운 결과는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점수가 안 나와도 대학을 못 가도 일단 나를 믿어본다는 전제하에,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다. 남들보다 몸이 약한 것도, 아파서 중학교생활을 제대로 못했던 것도, 6시간만 앉아있어도 저리는 몸과 머리는 어쩔 수 없다. 나는 옛날부터 '남들보다 못 산다'라는 생각을 자주 해왔는데, 지금 잘 생각해 보니 그 기준이 되는 '남'이라는 사람들은 내 머릿속에만 존재했다.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의 삶을 오래 살아와서 그런가 우리는 너무나 쉽게도 자신에게 급을 내린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급에 맞춰지도록 태어나고, 사유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인가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존재에게는 목적이 존재한다고 하였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아마 우리는 정해진 목적이 없기에 목적이라는 것을 그리도 갈망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가 형성되고 정부가 모이고 국가를 나누고, 다 모든 것이 추상적 개념일 뿐이다. 하지만 아무도 함부로 국경을 넘나들지 않듯, 우리는 사회가 아닌 감정이라는 또 다른 추상적 개념에게도 틀을 씌우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의 삶과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가장 오랜 오만이며 사회의 근원이다. 그러니 그냥 살자. 원하는 대로. 힘들면 힘들어하고 이혼하면 이혼하고 슬프면 울자. 어차피 인생은 내 뜻대로 함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