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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Aug 18. 2021

인생의 함정

사람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늘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한다. 심지어 자신의 안전감과 행복감의 문제는 우주의 문제보다 중요하다.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나 얼굴의 작은 종기가 전쟁과 테러에서 도피하는 수 백만 사람들의 안녕보다 중요하다. 물론 사람마다 자신이 안전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이 점을 비난할 수는 없다. 어차피 인간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렇게 설계된 것 같다. 그렇기에 "인생은 고해의 바다, 생로병사의 반복, 고통이 상수, 엉망진창, 어쩌라고, 내로남불" 등의 표현이 인류 역사를 통해서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문제는 아무리 기준을 낮춰도 자신의 안전이나 행복을 100% 달성하기가 어렵다. 이 병만 나으면, 이 사람만 사라지면, 이것만 이루어지면, 행복하고 안전할 줄 알았는데 어느새 다시 극복해야 할 어려움, 고통, 불평과 불만의 대상이 새로운 구름처럼 다가와서 우리 주변에 그림자를 만든다. 키가 170cm인 사람이 180cm  사람의 옷을 입거나, 발 사이즈가 26cm인 사람이 28cm 크기의 신발을 신고 있는 것처럼 헐렁한 느낌이다. 만약 인생에 원래 10% 정도의 아픔, 고통, 불안, 불평, 불만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면, 100% 건강, 평화, 안전, 행복 달성이라는 목표 설정 자체가 우리를 영원히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발보다 큰 신발을 신고 다니면, 아무리 조심해도 소리가 난다. 100% 안전과 행복이라는 목표가 원래 달성 불가하다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에 반에서 깡패 노릇을 하던 친구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면 학급에 평화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새 새로운 깡패가 탄생하고 이러한 현상은 어디서나 반복된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아예 인생에는 10% 정도의 불편과 불행, 질병과 고통, 불완전과 답답함이 따라 나니는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고 받아들이고 사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상대나 상사가 어느 정도 맘에 안 들어도, 세상과 몸의 질병이 완벽하게 낫지 않고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그냥 인생에 미리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10% 정도의 불행과 고통, 질병, 불만 수준 범위 내로 받아들인다면 사는 것이 훨씬 편할 것 같다.

(사진 출처: 로이터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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