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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Oct 22. 2022

타인의 평가 극복

루소의 영향을 받은 페스탈로찌는 200여 년 전에 근대 보통교육 이념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그의 교육 사상의 뿌리에는 교육을 통해서 아동들의 지덕체를 고루 발전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학교교육이나 가정과 사회교육은 극단적으로 발전한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경쟁 속에서 1등을 하는 기술 습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결과, 인생의 모든 면이 등급화 되는 현대판 카스트제도가 등장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지독한 편 가르기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이 타인의 인정을 갈망한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지지율에 애가 타고, 유명인들은 인기도에, 보통 사람들은 SNS 상의 댓글 수나 좋아요 클릭에 긴장하며 살아간다. 모든 관심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있다. 그리고 가까운 주변 사람이 나에게 건네는 의견, 평가, 비난을 아무런 검토 없이 수용한다. 특히 부모, 교사, 동료들에 의한 부정적인 평가는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넌 목소리가 안 좋아"라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평가를 받은 아이는 평생 남 앞에서 노래를 부르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나 동료들의 인정을 받아보려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고 애쓴다. 대학의 학과 선택, 직장 선택, 친구나 배우자 선택의 기준에도 진정 나의 희망보다는 주변 가까운 사람들의 희망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나의 선택에서 늘 대접을 받지 못한다. 식당에서 메뉴를 볼 때, 내가 원하는 음식의 종류보다는 가격표가 우선 눈에 띈다. 옷을 고를 때도, 내가 원하는 옷의 질과 내용보다 가격이 먼저 보인다. 평생 그렇게 살아간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지만, 우연히 알게 되어도 나의 희망은 늘 우선순위가 아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 지가 더 큰 관심사이다.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나의 극히 일면 만을 보는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나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타인이 나에게 가지는 편견을 진짜로 받아들인다. 어떤 정치인에 대한 지지율이 그 사람의 희망과 노력을 알고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회자되는 가십, 루머, 비평 등도 뿌리가 없는 나무의 낙엽과도 같다. 이런 교육환경과 세상의 문화 속에서 살다 보면, 인생의 상당 기간을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며 허비하게 된다. 진정한 자신의 삶은 허공 속에 맴돈다. 나이가 들어 세상의 이치를 알 때쯤이면, 허무한 생각이 든다. 불필요한 감정 억제, 눈치보기, 사막에서 신기루를 찾으며 살아온 인생이 아깝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세상이나 주변 사람들의 뜻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의견이나 평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나의 정체성의 일부로 만들지 말자는 의미이다. 내가 나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  타인은 나의 내면을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라도 될 수 있다. 타인이 나에게 두르는 의견과 평가의 벽에 갇혀서 살 필요가 없다. "나는 안돼; 나는 머리가 안 좋아; 너무 나이가 많아" 등의 생각은 세상이 나에게 주입시킨 의견일 뿐이다. 세상이 나에게 입혀준 옷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내가 스스로 만든 옷을 입고 당당하게 주동적으로 내가 숲 속에 길을 만들어나가는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이라는 숲은 미지의 숲이다. 숲의 입구 공원에 있는 나에게 익숙하고 편한 놀이터를 떠나서, 나무가 우거진 숲 속으로 들어가자. 숲 속의 길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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