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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Aug 16. 2023

과거에 반응하지 말자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누군가에 의해서 이미 만들어진 결과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 하늘의 별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별들은 사실 수백만 광년을 날아온 과거 들의 모습이다. 지금 현재의 별들의 모습은 다시 수백만 년이 지나야 만 우리가 보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것은 결국 과거가 만들어 낸 형상, 관계, 이미지 등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눈과 귀 등 우리의 오감이 과거가 만들어낸 정보를 포착한다. 우리가 내뱉는 말조차도 입에서 떠나는 순간 벌써 과거의 일이 된다. 건축가가 집을 만들듯이 우리는 입을 통해서 말을 만들어 낸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말이라는 무형의 존재를 생산하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말에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사실 이미 지난 과거 상황에 대응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나쁜 소리를 했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게 그에 상응하는 복수를 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그 사람의 과거와 싸우는 것이며, 다시 변할 수 있는 그 사람의 현재를 못 보는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직장에서건, 집에서건, 어디에서건 이미 지나간 과거와 싸우고 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현재가 잉태할 수 있는 수많은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못 보는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원칙이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과거와 싸우고 있음을 말한다. 과거에 잘못된 점을 고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주 엄격하게 생각해 보면, 이미 만들어진 집이나 이미 입과 몸에서 떨어진 말이나 행동을 고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무리 리모델링을 한다고 해도, 원래의 집이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과거가 만들어낸 현실에 집착하다 보면, 내가 새롭게 택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들을 놓치게 된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 질서도 과거의 세력 관계가 만들어 놓은 결과이다. 현재 사회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 제도를 완전하게 뜯어고칠 수도 없다. 어떤 제도를 고치는 순간 새로운 제도라고 느껴지는 것이 이미 또 다른 과거가 되기 때문이다. 교육 제도의 변화를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매 시대마다 과거가 만들어낸 현 교육 제도에 대해 불평을 한다. 그래서 그 과거를 고쳐 보려고 매번 새로운 제도를 발표하지만, 그 사이에 이미 새로운 현재가 다가와 있기 때문에 또 다른 과거 제도를 볼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 사회의 세력 관계나 염원을 반영할 수 있는 현재적인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순간 세상은 더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남녀 관계나 친구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애인이나 친구에게서 그 사람의 과거를 볼 뿐이다. 지금 현재 변하고 있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늘 그 사람이 했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분석하고 반응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꿈틀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과 귀가 이미 지난 가시광선이나 음파를 포착해서 뇌에 전달하고, 뇌는 뒤늦게 이러한 정보들을 해석하고 반응하게 만든다. 몸은 생리적으로 지금 변하는 현재를 동시에 분석할 수가 없다. 우리가 힘들어하는 문제들을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인간관계이건, 직장 관계에서 어려운 점이건 현재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전부 과거의 일들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는 것도 과거에 일어난 일이 다시 발생할까 우려하는 마음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만 현재를 산다는 의미일까?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만약 조금 전에 어떤 사람이 나에게 기분 나쁜 말을 했다면, 속상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런 속상한 감정을 반복해서 지속하지 말자는 의미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어떤 일이라도 일단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그 일을 꼭꼭 씹으면서 놓아 주지를 않는다. 대개 그런 식으로 지나간 과거에 반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인생이라고 여긴다. 그 대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현재라는 가능성을 포기하는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수십 년간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분야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잘 나타난다. 늘 상대방이 행한 과거를 비난하고, 현재 무엇을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잠시라도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생각해 보면, 과거의 흔적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이제 새롭게 무엇을 해야 할지 막연한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다. 인생이란 원래 지나온 과거, 지나온 관계, 건너온 다리를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저 멀리 숨어 있는 별들의 현재 모습을 찾아서 떠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인생이다. 한번 해 본 것을 두 번 다시 할 필요가 없다. 습관이라는 것도 사실은 과거를 잊지 못하고 반복하는 것이다.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에서 자꾸 지나온 과거를 반복하거나 과거에 반응하면서 산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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