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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Sep 22. 2023

득심

한 때는 무척 어렵게 느껴졌던 일들이 어느 순간에 또는 뜻하지 않은 경험을 계기로 자연스레 해결된 적이 있다. 젊어서 담배를 조금씩 피웠지만, 40이 넘으면서 흡연 후 가슴이 답답해지자 흡연 횟수가 점점 줄어들어 50 경에 완전하게 끊게 되었다. 문제는 청년기 이후 매일 마시는 술이었는데 40이 넘은 어느 날 갑자기 술이 물처럼 보였고, 실제로 마셔본 소주가 물맛처럼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렇게 13년간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게 되었다. 의지로 술을 끊은 것이 아니고, 그냥 매일 오후만 되면 찾아오던 술이 나를 떠난 느낌이었다. 그전에는 길을 걸어갈 때 술집 간판이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이후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일 년에 몇 번 정도 친구들과 꼭 마실 필요가 있을 때만 적당히 마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필자도 어려서부터 세상만사에 대해 늘 걱정이 많고 어떻게든 주변을 통제해 보려는 마음이 많았다. 자신의 마음 자세를 바꿀 수는 있지만, 세상일이나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다는 격언이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고쳐보려고 애쓰며, 그런 노력 자체가 인생이라고 생각까지 한다. 한 때는 내가 고칠 수 없는 현실을 고치고 사람의 마음을 바꿔보려는 나의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효과적인, 철학적인 깨달음이 왔다: 나의 마음의 자세를 내가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은 우주 속에 내재한 신의 일임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주변 환경이나 아는 사람들에 대해 불평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젊어서부터 성격이 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했다. 그런데 주변 인생에 대한 통제의 마음을 내려놓자 신기하게도 인내심이 함께 자라난 것 같다. 세상을 내 생각대로 바꾸려는 마음과 급한 성격은 쌍둥이다. 만약 10년 전의 지인들이 지금의 나를 보면, 사람이 많이 변했다고 할지 모르겠다.

나의 마음의 자세를 고치는 것이 유일한 관심사로 남게 되었다. 사람이 의지 또는 열망 또는 믿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된다면, 그 끝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의 느낌이 왔다. 진정으로 하나의 생명체인 내가 절대자의 피조물이고, 내가 우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자각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은 단지 고장 난 뇟속 프로그램의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 내일 아침 눈을 뜨게 될지를 알 수 없는 인간이 내일 일, 한 달 후 일을 걱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자 뇌의 위대한 착각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매일매일 인생이 나에게 부과하는 일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나의 삶이다. 이제야 깊은 숲 속에 꿋꿋하게 홀로 서있는 소나무와 어디에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의 마음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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